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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000km의 미서부여행에 대한 기록을 쓰며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5. 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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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인상 깊은 도로가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일 달릴 도로였죠”

 

매일같이 수백 km를 달려도 오늘은 늘 새로운 날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커다란 동경과 막연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동시에 강한 동기 부여와 욕망을 자극한다. 오늘 아침,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처녀비행을 하듯 새로운 도로에 올라선다. 그리고 이 길의 끝이 없었으면 하는 무모한 바램과 함께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다.

 

16,000km를 달리며 눈에 담았던 모든 풍경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듯하다. 그 모든 길을 처음인 듯 다시 달려볼 수 있을 테니까.

 

이미 저장된 기억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부럽다. 당신은 저장된 기억이 없으며 이제 곧 그곳으로 갈 것이므로.


몽골의 남고비(south Gobi) 사막을 달릴 때였다.

해가 뜨자마자 시작된 기나긴 운전은 한 번의 펑크와 지독한 먼지 속에 밤이 되어서도 도대체 그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지속하고 있었다. 대해의 수평선만큼이나 반듯한 지평선을 만들어내는 저 평평한 대지, 뜨거운 아랫목에 우글거려진 누런 장판 같은 딱 그 정도의 평평함을 가진 누런 사막과 푸른 초원으로 반복되는 그 끝없는 대지는 낮 동안에는 그나마 단조로운 운전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내가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조차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독한 어둠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헤드라이트 속의 뿌연 흙먼지가 전부였다. 딱히 도로라고 부르기도 힘든 이 길을 도대체 몇 시간이나 달린 것인가. 차라리 말(horse)을 타고 달리는 것이 빠를 것 같은, 도로인지 자국인지조차 애매한 이 표지판 하나 없는 도로를 500km도 더 내달린 듯하다.

곧 내일이 머지않은 시각, 드디어 등대가 보인다. 그저 까맣기만 한 시야 너머 저 멀리 지평선 언저리로 추측되는 지점에 불빛이 보인다. 그래 저건 별빛이 아니다. 언제나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샛별은 이미 아까부터 나를 따르고 있었으니까. 분명 전기로 밝혀진 빛이다.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른 듯하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도 오래 가진 않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던 그 불빛은 그러고도 한두 시간을 더 달려서야 다다를 수 있었다. 사막과 바다는 전혀 다른 물성이지만 어둠이 깔리면 별반 다를 게 없는 듯하다. 파도를 넘는 배처럼 땅의 굴곡에 몸을 맡긴 채 망망대지를 헤엄쳐간다.

 

비로소 도착한 처그체치(Tsogttsetsii).

여기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석탄 매장지의 개발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마을. 포장도로조차 제대로 없는 불모지에 판자촌처럼 들어선 거친 나무집과 게르(Ger)가 얽혀있는 곳. 마치 미국 서부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런 황량한 동네가 고비 사막 한가운데 형성된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함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르다. 거대한 돈의 흐름이 시작되는 곳이기에 단지 허름한 마을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속사정이 베어있다. 마치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들어선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어느 광산 마을처럼.

 

그 이후로도 일주일을 더 헤집고 다닌 듯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에서 북으로. 거대한 평원의 풍경은 아무리 차를 몰아 달려봐도 아주 천천히 바뀔 뿐이다. 반듯했던 지평선이 살짝 흔들린 후 반나절을 더 달려 그 거대한 산맥의 윤곽에 감탄하고, 다시 반나절을 더 달려 비로소 그곳을 벗어난다. 거대한 평원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듯한 그런 산맥은 상당히 이질적이기도 하지만 적나라한 이런 지형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잡는다. 아무리 유명한 월드 클래스의 비경을 보더라도 이 거대한 평원에서 받은 인상을 지우진 못한다. 왜냐면 그것은 고독감... 거대한 대지에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듯한 텅 빈 공간에서 오는 그 순수함과 단조로움 속에 깃든 지독한 고독감. 눈으로 각인되는 인상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곡에 박히는, 개인의 본질에 대한 감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다.

한동안 삶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건 먹어가는 나이 때문인지, 회사 때문인지, 아니면 내 삶의 목적이 희석돼 가고 있기 때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쨌든 확실한 건 더 이상 이렇게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변화를 주저하지 않던 내가 이곳에서 쓸데없이 오래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안정감, 안락함, 편리함, 수월함, 넉넉함, 적당함. 이런 단어들로 점철된, 그저 타협된 모습으로 그 조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이리라. 이 시대에 당연한 듯 보이는 그런 이기심도 한계를 넘으면 역효과가 난다.

 

왜냐하면 삶이 즐겁지 아니하니까.

 

가까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할 일이 많은 듯했다. 그만큼 꿈도 많았던 듯 하다. 약진하던 중국의 소비력은 광물 가격을 크게 올려놓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자원개발의 붐이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지질학을 전공한 내게도 확실히 그 시절은 호시절이었다. 목적은 뚜렷했고 안건은 넘쳐났다. 그 동안의 배움과 경력을 통해 갈고 닦은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러 예리하고 가차없는 분석과 비평을 쏟아냄으로써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삶은 만족스럽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거품은 한순간에 꺼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역시 거품 같던, 아니 거품이던 정책을 필두로 모든 것이 가라앉았다. 아주 조용히.

 

역시나 냄비 근성은 아직도 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펀더멘탈도 약한 주제에 항상 한발 늦으니 자원 빈국의 어리석은 정책은 그런 쳇바퀴에서 탈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꾸준히 기초 체력을 키워도 모자를 판에...

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그 거품이 걷힌 후에도 한동안 더 머물면서 쓸데없이 삶을 늘어지게 만든 내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은 것뿐이다. 월급쟁이한테 월급은 그만큼 무섭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하니까. 내 인생을 보호하기 위해, 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내 늙은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 우리는 매월 약을 받아먹는다.

이젠 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에 좋은 듯했던 약도 자꾸 먹으니 위장병이 생기는 듯하다. 그리고 치유를 좀 해야겠다. 일단은 그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받아야만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치료를 받는다고 새 인생이 펼쳐지는 것도, 앞으로 더욱 건강한 삶이 펼쳐지리란 것도 보장할 수 없다. 인생은 그리 쉽게 전환되지 않는다. 단지 행복을 느끼는 순간만이라도 부여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삶의 주 무대를 떠난다는 것은 역시나 힘든 일이다. 학생은 졸업을 하며 학교를 떠나고, 근로자는 퇴직을 하며 회사를 떠나고, 스포츠 선수는 은퇴로 팀을 떠나며 정치인은 이런저런 이유로 정계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사람은 죽으며 세상을 떠난다. 자의든 타의든 머물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상당히 불편하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익숙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몇 번은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이 불편한 현실은 항상 그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나는 다음 행보에 대한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그러기엔 시장 상황이 너무 안좋았다.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지표들이 산업 전반에 걸쳐 어두운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고 있었다. 난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적인 성향에 좀더 가까운 듯하다. 혹자들은 마치 낙관론은 좋은 것, 비관론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듯하다. 사실 그 두 성향은 좋고 나쁨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좀더 치밀하고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고 이는 무엇을 실행함에 있어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이창호 9단도 비관파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서두르진 않지만 매우 치밀한 계산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비관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좋은 수저를 가지고 살아오질 못해서일까. 난 항상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때론 그 플랜 B를 미리 마련하지 못해 코너에 몰리기도 했다. 낙관론자는 코앞에 드리운 문제를 낙천적으로 헤쳐나갈지도 모르겠지만 비관론자는 닥쳐 올 역경을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창호 9단이 종반에 이르러서야 계산을 시작하고 끝내기를 두는 건 아니다. 초반에서 중반, 종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산하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역경의 최후는 승리를 맞이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승리의 원동력은 종반이 아니라 초반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플랜 B를 마련해 두지 않았다. 마련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단지 지쳤기 때문이다 라고 변명하고 싶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계획하고 대처하고... 이런 모든 생각들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며 힘들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냥 그런 것들은 한번쯤 뒤로 미루고 이번만큼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무거운 짐을 억지로라도 내려놓고 앞으로 닥칠 걱정들, 어쩌면 반드시 도래할지도 모를 그 걱정들을 이번만큼은 미뤄놓고 당장 이순간만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떠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그 곳으로.

이번에는 더욱 절실히, 더욱 열렬히, 더욱 깊숙이, 더욱 멀리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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