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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LA 공항 인근 렌트업체 허츠(Hertz)에서의 해프닝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기억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5. 2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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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에서 내리자, 렌터카 사무실과 벽에 설치된 예약 전광판이 보인다. 내 이름과 예약된 차량의 주차 위치가 써 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주차되어 있는 듯하다. 영업소 부지가 상당히 넓은 터라 저 끝에 주차되어 있다면 캐리어를 끌고 가는 일도 귀찮은 일이다. 사무실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는 고가의 스포츠카에 잠시 눈길을 던져 본다. 그러면서 이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저런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달리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아, 사치스럽지만 알 듯 말 듯한 그 기분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동물에 불과했을 테고, 당연하게도 그것에 대한 실현도 없었을 것이다. 상상 그리고 실현···. 아직 그 실현은 현실 저 너머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상상했던 것을 또다시 실현하고 있는 중이니, 그것은 공상이 아닌 것은 물론 매우 가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봤나. 여기 매니저의 면상에 그 어원도 불분명한 어처구니를 마구 내뱉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그곳에는 엘란트라가 떡 하니 놓여 있다. 아반떼의 미국명 엘란트라···. 아니, 네가 왜 여기에 놓여 있는 것이냐? 나는 분명 그랜저급인 쉐보레 임팔라를 예약했는데 말이다. 워낙 장거리를 움직여야 하고 또 짐도 많은 데다가 렌트 비용도 마음에 들어 분명 그 녀석을 예약했는데, 왜 낮은 등급의 차량이 배차되어 있는 것인가. 미국에서는 엘란트라를 임팔라 급으로 우대한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고···. 
그런데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거의 신차다. 이제 막 비닐을 벗은 듯한 새 차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마일리지도 아직 세 자리···. 잠시나마 나 자신과 타협할 뻔했지만, 이성을 되찾는다. 렌트 비용이 조금 내려가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살짝 불안하고, 무엇보다 트렁크에 캐리어가 모두 들어가지 않는다. 특히 커다란 식량 캐리어가 너무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이런 이유를 떠나서 매뉴얼을 중시하는 미국인이 비슷한 급도 아닌 더 아랫급의 차량을 막무가내로 배차해 놓은 배경이 괘씸하다. 누구든 쉽게 가입할 수 있는 허츠 골드 플러스 회원인 나를, 앞으로 미국 경제를 위해 없는 돈을 펑펑 쓰고 다닐 나를 이렇게 홀대하다니···. 참을 수가 없다. 첫날부터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 

당당히 사무실로 걸어가 서툴지만 아주 착하게 내 애로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본래 우리는 미국인들에게 약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여긴 홈그라운드도 아닌데···.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산타페를 슬쩍 권했다. 귀가 살짝 쫑긋했다. 사실 SUV도 예약 당시 상당히 고민한 부분이었는데, 렌트 비용이 세단형에 비해 월등히 많이 나온다. 산타페가 어느 등급에 속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만일 추가 비용이 없다면 왜 안 되겠는가. 나는 추가 비용이 없다는 것을 그녀로부터 재차 확인받았지만, 솔직히 꺼림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쨌든 처음의 예약 내용을 현지에서 변경하지 않는 것이 변수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팔라를 내놓으라고 막무가내로 버티기에는 난 너무 착하고 소심한 여행객이다.
그런데 나에게 달콤한 유혹을 보냈던 그녀가 이내 모니터를 응시하며 뭔가를 살펴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 후 살며시 웃으며 모든 사태를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임팔라가 준비됐다며 그곳의 주차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이나마 이 사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바쁘게 돌아가는 머리를 애써 외면하며, 오늘 가야 할 거리가 짧지 않다는 것을 상기했다.  SUV의 아쉬움을 살짝 뒤로한 채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그들과 실랑이하기에는 내 주변머리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원래 예약한 차량을 받았으니 시간이 조금 지체된 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잠깐의 해프닝이었지만,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변수는 간혹 여행자들을 힘들게 한다. 여행 전의 꼼꼼하고 철저한 계획과 준비야말로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1년 내내 당연할 것만 같은 이 아름다운 남서부 캘리포니아의 날씨조차 하필 내가 LA에 머무는 그 며칠 동안 구름이 가득하고 비까지 내리는 운이 없는 경우도 있다. 꼭 달리고 싶은 도로였지만, 하필 내가 가는 날 급격한 날씨 변화로 도로가 통제되는 경우도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아예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떠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로 불확실성을 차단하며 계획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어떤 스타일이든 구성원들의 특성에 맞게 여행을 해야 한다. 후자 스타일의 여행은 적어도 중간은 간다. 구성원들의 특성을 잘 모르겠다면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하라. 동남아 어느 해변의 리조트 여행도 아니고, 넓은 대륙을 여행한다면 그게 걸맞은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이다. 한인 민박집, 그 식당 한편에서 맥주와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있던 그 둘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20대 중반의 두 청년은 넉넉하지 않은 최소한의 경비와 간단한 짐을 가지고 시애틀로 들어온 후 며칠 머문 다음, 로컬 항공을 타고 어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고 한다. 빠듯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내려오느라 남은 돈의 상당 부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모레는 버스를 타고 LA로 가서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들은 미국이 궁금했고 또 미국을 동경했다. 그래서 미 서부를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등 3개의 대도시를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경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해서 여행을 못 할 것은 없다. 20대 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충분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여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대도시에 머물렀다는 게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대도시만 봤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미 서부 지역을 방문해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이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국한된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이 미 서부 여행에 그토록 열광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도시의 이국적인 풍경과 거리는 미 서부 여행에 있어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 정말로 이곳에서 기대하는 것 그리고 충만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그런 대도시의 문명이 아니라 바로 자연이다. 
충만한 에너지와 영감으로 가득 찬 20대의 팔팔한 청춘에게 샌프란시스코의 고풍스러운 양식의 주택과 이국적인 거리에서의 셀카보다는 가슴이 막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랜드 캐니언의 시간과 공간을 느끼는 것이 더욱 긴 여운과 감동을 부여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느 여행이든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 충분한 배경지식과 이유를 가지고 여행 루트를 선정했다면 그 역시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여행이 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사와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애처롭고 슬펐다.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이들이 차를 몰고 캘리포니아만 돌아다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 캐니언만 다녀왔어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을 터였다. 

"이들의 청춘에게 필요했던 것은 도로와 자동차 그리고 이로부터 얻는 자유로움이였다. "

 


내비게이션
은색의 임팔라가 깨끗한 몸으로 기다리고 있다. 오, 오! 그리고 저 트렁크···. 넓고 깊은 저 공간을 보라. 무지막지하게 들어갈 듯한 저 여유로움···. 역시나 거대한 식량 캐리어를 비롯해 모든 짐이 저 속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뒷좌석 공간이 텅텅 비었으니 이 얼마나 통쾌한가.
차량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왜 이런 차를 놔두고 아반떼를 배차해 나를 고생시킨 것일까. 이제 와서 그 속사정을 굳이 알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천만다행이다. 잠시였지만 내게 불편을 끼친 이들의 업무 처리에 대한 감정이 저 넓은 트렁크 안으로 사그라졌다.
이제 운전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 버튼의 배치도 한번 쓱 흩어보고, 기어나 센터페시아의 특징을 찬찬히 살펴본다. 오호, 매립형 내비게이션이 설치되어 있다.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지만, 혹시 모를 비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없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했던 블루투스도 다행히 있었다. 렌터카의 옵션은 아무래도 충분치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몇몇 중요한 옵션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체크하게 된다. 렌트 업체에 납품하는 차량의 옵션 수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악 듣는 것조차 불편한 차량들이 많았다. 차량 등급에 따라 다른 건지, 복불복인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세상에 아무리 렌터카라도 갖출 건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자, 이젠 가장 중요한 내비게이션을 실행할 차례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예전에는 지도만 보고 다닌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내비게이션을 키지 않으면 뻔히 아는 길도 허전하다. 하물며 LA 같은 대도시에서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아무 데도 못 갈 듯하다. 
먼저, 포켓 와이파이 기기를 켠다. 나는 유심보다는 포켓 와이파이를 즐겨 사용한다. 여러 대의 핸드폰이나 태블릿 PC를 함께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해외 유심의 경우에는 뭔가 머리가 아픈 특징들이 많다. 사실, 단일 이용 요금은 포켓 와이파이가 비싸다. 하지만 여러 대의 통신기기를 사용한다면 이게 편리하다. 무엇보다 사용 시 고민거리가 적다. 
와이파이를 연결한 후 구글맵을 실행한다. 바로 이거다. 미국 여행 시 다른 별도의 내비게이션은 필요 없다. 내 핸드폰에 설치된 구글맵이면 충분하다. 신호가 안 잡히는 곳이 많은 미 서부를 여행할 때도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해 저장해 놓는다면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더욱이 렌트 업체에서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에 비해 시각적으로도 뛰어나기 때문에 복잡한 인터체인지나 교차로에서 길을 놓치는 경우가 줄어든다. 사실, LA 같은 대도시의 고속도로망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하다. 특히 외국인은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은 자주 놓치거나 잘못 들어가기 십상이다. 그나마 구글맵이 비교적 도로망을 잘 보여 주고 음성 안내도 한국어로 실행되는 등 외국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의 내비게이션이다. 
또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방문할 장소를 미리 저장해 놓을 수 있으므로 길 찾기가 편리하다. 단, 앞서 말한 대로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해 놓는 것이 좋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잘 소개되어 있는 블로그들이 많으니 참조하자. 그리고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지도의 크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미국처럼 넓은 지역을 여행할 예정이라면 운전할 지역을 모두 커버할 수 있도록 조금씩 겹쳐 여러 장의 지도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한다. 운전뿐만이 아니라 대도시 내에서 도보로 주요 사이트를 찾아갈 때도 편리하다. 

아, 챙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핸드폰 거치대다. 핸드폰의 구글맵도 이용하고 음악도 들어야 하니, 거치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때 송풍구에 끼우는 형태는 추천하지 않는다. 차량에 따라 잘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차량용 핸드폰 충전 케이블이 당연히 필요하다. 내비게이션 기능은 배터리를 은근히 많이 소비한다. 혹시 블루투스가 없다면 곤란하니, 핸드폰의 이어폰 잭과 차량을 연결할 AUX 케이블도 준비해 가면 좋을 듯하다. 

이제 모든 운전 준비가 끝났다. 음악을 들으며, 드디어 렌터카 영업장을 빠져나간다. 이 건조하면서도 뜨거운 공기란···. 땀이 나는 습한 무더위가 아닌, 이런 캘리포니아의 뜨거움이 얼마나 반가운지···. 운전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자, 조금만 참고 이 복잡한 대도시를 빠져나가자.

 

LAX Ground Transportation Waiting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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