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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라스베가스 인근에 위치한 불의 계곡 주립공원(Valley of Fire State Park) 그리고 미국 국립공원의 종류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5. 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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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의 기분 좋은 행운 덕분인지, 오늘 아침은 더욱 상쾌하게 다가온다. 시차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 어제에 비해 오늘 아침의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다. 
오늘 낮에는 그동안 마음만 먹다가 미루어 온 불의 계곡에 다녀올 계획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어물거리다 보면 늦을 수 있으니 서둘러 길을 나서야겠다.

라스베가스에서 불의 계곡으로 가는 길

 

불의 계곡으로 가는 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의 계곡 주립공원으로 가는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서 정말 훌륭하다. 공원 안의 도로야 말할 나위 없으며, 공원으로 가는 도로도 무척 훌륭한 편이다. 애리조나주나 유타주의 그 흘륭한 도로와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라스베이거스 근교에서 이처럼 쾌적하고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스트립에 버금가는 행운이리라.
이 공원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라스베이거스에서 15번 주간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달린 후 169번 도로를 타는 것이지만, 여유롭고 조용한 드라이브와 멋진 경치를 함께하고 싶다면 좀 더 거리가 먼 167번 도로를 달려 보는 것이 좋다. 따라서 갈 때는 아래쪽에서 접근하는 167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면서, 거친 황무지 위를 여유롭게 운전해 불의 계곡으로 간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169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린 후 15번 주간도로로 갈아타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오면 한나절의 여정이 무척 만족스러울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 달려도 상관없지만, 원래 이런 여행에서는 목적지로 향하는 드라이브가 더 만족스러워야 하는 만큼 전자의 루트를 추천한다. 167번 도로를 타는 경우에는 약 120km를 달려야 하며,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또한 15번 주간도로를 타는 경우에는 약 90km를 달려야 하며, 소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Valley of Fire State Park_Nevada State Parks Photo


스트립을 빠져나와 2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의 헨더슨 시티로 차를 몬다. 넓은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달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지만, 도로가 얽히는 인터체인지 구간에서는 구글맵을 보고 있는데도 간혹 헷갈리고는 한다. 헨더슨에 다다르면 차선이 점차 줄어들고, 운행하는 차량들 역시 제법 줄어든다. 이 도시를 지나 564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미드호 국립 휴양 지구(Lake Mead National Recreation Area)의 시작을 알리는 Fee Station이 나타난다. 직원에게 국립공원 연간 회원권(Annual Pass)을 보여 주자 바로 통과시켜 준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으로 가는 도로



National Park Annual Pass
미국의 주요 공원(park)들은 국립공원, 주립공원 또는 인디언 자치 구역의 공원 등과 같이 공원의 운영 주체나 분류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입장료를 받는다. 우리나라는 개인당 입장료를 받는 것이 보통이지만,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고 또 국토가 넓은 만큼 자동차 여행객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기준으로 입장료를 징수한다. 물론 도보 여행자나 자전거 여행자처럼 차량을 동반하지 않는 개인 여행자들을 위한 입장료 기준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입장료도 일회성 또는 연간 입장권 등으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미국 국립공원(National Park)의 입장료 및 입장권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국립공원마다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기준이 비슷하다. 여기서는 캘리포니아의 대표적 국립공원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입장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비상업용의 일반 차량, 픽업 트럭, RV, 15인승 이상의 van은 일주일 동안 유효한 30불의 입장권
·모터사이클(오토바이)는 승객 수와 상관없이 일주일 동안 유효한 대당 20불의 입장권
·도보, 자전거, 말, 15인승 이상의 비상업용 버스나 밴은 일주일 동안 유효한 인당 15불의 입장권
·상업용 투어 차량(6인승까지의 승용차)은 25불에 인당 15불 추가
·상업용 투어 차량(7~15인승의 밴)은 탑승객 수와 상관없이 125불
·상업용 투어 차량(16~25인승의 미니버스)은 탑승객 수와 상관 없이 200불
·상업용 투어 차량(26인승 이상의 버스)은 탑승객 수와 상관없이 300불
·요세미티 연간 입장권은 60불(일반 개인 방문 차량/12개월 유효)
·미국 국립공원 연간 연장권은 80불(일반 개인 방문 차량/12개월 유효)

나처럼 렌터카를 이용한 개별 여행자는 동반한 승객 수에 상관없이 차량 한 대당 30불을 지불하면 일주일 동안 국립공원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배인 60불이면, 해당 국립공원을 일 년 내내 출입할 수 있다. 그러나 미 서부로 여행을 온 사람이 국립공원을 한두 곳만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 서부는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국립공원이 몰려 있는 곳인 만큼 여러 공원을 들르게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일 년 동안 미국의 국립공원을 모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연간 패스를 80불로 구입해 놓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1년 이내에 당신이 미 서부를 그리워하고 또 가 보지 못한 곳을 동경한 나머지 다시 방문할지···. 대도시에서 머물지 않고 미 서부를 제대로 여행할 계획이라면 국립공원 연간 패스를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이 패스로 국립공원뿐만 아니라 국립(National)이 붙은 모든 종류의 공원을 드나들 수 있다. 
주립공원(state Park)이나 기타 공원 중에서 이 패스로 가능한 곳도 있었던 것 같지만 확실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했다. 아무튼 어떤 공원을 가든, 일단 즐거운 여행자의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한 후 슬며시 연간 패스를 보여 주자. 그리고 직원이 OK하든, 그 패스는 안 되니 별도의 입장료를 내라고 하든, 그에 따라 처신하면 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저 국립공원이라고 통칭했지만, 사실 미국의 국립공원은 더욱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전형적인 국립공원 이외에도 국립이 붙은 다양한 명칭의 알 수 없는 구역들이 지정되어 있어 종종 헷갈리게 만든다. 이왕 입장료에 대해 알아봤으니, 미국 국립공원의 분류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좋을 듯하다. 

미국의 국립공원 시스템(US National Park System)
미국의 국립공원은 물리적 특징이나 계획된 목적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그 종류는 대략 20여 개에 달한다. 외국인 여행객 입장에서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자동차 여행객이 도로에서 만나게 되는 공원 안내 표지판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만큼, 전형적인 국립공원 이외에 다른 분류에 대해서도 대략이나마 알고 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국 국립공원의 분류 및  지정 개소 
National Park  (59) 
National Monument  (80)  
National Preserve and Reserve  (21)
National Recreation Area  (18)
National Lakeshore  (4)
National Seashore  (10)
National Wild and Scenic River  (15)
National Scenic Trail  (3)
National Parkway  (4)

National Historic Site and International Historic Site  (79)

National Historical Park  (46)

National Battlefield, National Battlefield Park, National Military Park and National Battlefield Site  (25)

National Memorial  (30)

Other Designations  (11)


National Parks
국립공원 분류상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가 흔히 칭하는 국립공원으로 “왕관의 보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59곳의 국립공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경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거대하고 다양한 자연적 특징들과 함께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다른 공원들에 비해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며, 광산 활동이나 사냥 등과 같은 인위적 행위들은 대부분 제한된다. 
우리나라는 지역 주민의 경제활동을 돕고자 국립공원 내에서도 일부 상업 활동을 허가해 주거나 불법 영업을 눈감아 주는 등 특히 음식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매업이 발달해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활동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국립공원의 경관을 헤치기 일쑤이며, 관광객 역시 음식이나 술을 먹으면서 주변 계곡을 헤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미국은 국립공원 내에서의 이러한 상업적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에 일부 전통적으로 중요한 구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원 경계 밖에 이러한 상업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특정 국립공원의 경우 일반 차량의 출입을 금지하고 셔틀버스로 공원을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엄청난 국토의 넓이에도 수많은 공원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과 규제는 우리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엄격하다. 그렇다고 제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킹을 위한 트레일을 비롯해 국립공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많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런 공익 서비스 부분 역시 우리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엄격한 제도와 규제를 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자유와 권리를 존중한다. 우리나라는 국립공원의 전 구역에서 금연을 실시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삼림이 우거진 국립공원일지라도 흡연할 수 있는 구역 정도는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다. 
국립공원의 역사에 있어서나 국력에 있어서나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긴 어렵다. 우리나라 공원 관리의 수준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에 앞으로 개선해야 할 규제와 정책이 많지만 이 또한 당장 해결할 수 없고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미국의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들이 가진 것들과 그것을 관리하는 수준이 한없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National Monuments
80여 개에 이르는 국가 기념물(National Monuments)은 자연적 규모나 역사적 가치가 높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가 작거나 단일한 대상을 상대로 지정된다. 종종 역사적이거나 고고학적인 문명, 유적, 공예품들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특징적인 소규모의 자연물에 대해 지정하기도 한다. 국립공원만큼의 매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국립공원을 오가다 만날지도 모르는 이런 소규모의 기념 공원을 한번 쯤 들러 그 조용한 매력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National Preserves
18곳이 지정된 국립보존구역(National Preserves)은 지질학 및 동식물의 서식 등과 관련한 자연적 특징이나 규모에 있어서 국립공원과 유사하지만, 일반적으로 국립공원에서 허용되지 않는 특정 활동들을 명시적으로 허용한다. 즉, 국립공원과 인접해 있어 모든 면에서 국립공원과 유사하지만, 사냥이나 석유 및 가스와 같은 자원 탐사가 허용된 구역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국립보존구역들의 절반은 알래스카에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National Reserves
단지 2곳만이 지정되어 있는 국립보호구역(National Reserves)은 주(state) 또는 지방 단체 및 민간 단체와의 협력에 따라 관리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국립보존구역(National Preserves)과 거의 유사하다.

National Recreation Areas
미국에는 총 18곳의 국립휴양지구(National Recreation Area)가 지정되어 있는데, 보통 호수나 저수지 인근에 지정되는 이 공원은 낚시, 보트, 사냥 등의 야외 활동을 명시적으로 승인해 준 지역이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강을 막은 후버댐과 글렌캐년댐으로 인해 생겨난 거대한 인공 호수인 미드호(Lake Mead)와 파월호(Lake Powell) 지역은 각각 미드호 국립휴양지구(Lake Mead National Recreation Area)와 글렌캐년 국립휴양지구(Glen Canyon National Recreation Area)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보트 등의 수상 스포츠가 발달해 있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엄청나게 넓은 호수 위에서의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다. 

National Lakeshores and National Seashores
태평양, 대서양, 걸프만 연안에 총 10곳의 국립해안지역(National Seashores)이, 그리고 그레이트호(Great Lakes) 주변에 4곳의 국립호수지역(National Lakeshores)이 지정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가나 자연 호숫가 지역 중 국립휴양지구(National Recreation Area)와 같이 휴양 활동을 위해 지정된 곳으로, 대부분의 공원에서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

National Rivers and Wild and Scenic Rivers
앞서 설명한 바닷가, 인공 호수, 자연 호수 지역에 지정된 휴양지구처럼 강을 보호하고 또 주변 경관을 보존하며, 필요에 따라 하이킹이나 카누 타기처럼 강에서의 액티비티를 허용하는 구역이다.
National Trails
여러 주(States)를 넘나드는 역사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높은 3곳의 주요 탐방로를 국립탐방로(National Trails)로 지정해 여행객들의 하이킹 등을 위한 서비스 및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있다.

National Parkways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처럼 문화적 가치가 있는 주요 공원과 이를 둘러싼 도로를 포함하는 국립공원도로(National Parkways)로서, 경치가 좋은 공원 내에서 여가 활동과 함께 드라이브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National and International Historic Sites
저명한 인물의 집이나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공공건물 등과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적지를 대상으로 지정된다. 따라서 규모는 다른 공원들에 비해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총 78곳의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s)와 1곳의 국제사적지(Inter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다.

National Historical Parks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s)와 유사하나, 단일 건물이 아닌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들이 모여 있는 도시나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때로는 자연적인 명소들을 포함하기도 한다.

National Battlefields, National Battlefield Sites, National Battlefield Parks, and National Military Parks
미국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터 및 군사학적으로 중요한 건물 등을 포함한다. 

National Memorials
워싱턴 DC에 있는 워싱턴 기념비처럼 주요 역사적인 인물 등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며, 탑이나 기념물과 같은 구조물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Other designations
앞선 표준분류들에 속하기 애매한 것들을 포함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국립공원은 모두 400여 곳에 달하며, 이곳에 소속된 정규·비정규 직원은 약 22,000명에 이르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투입되는 정부의 예산은 2015년 기준으로 28억 불(한화 약 3조 원)에 달한다. 2015년 기준으로 3억 명의 관광객이 이곳에 다녀갔다. 이들의 소비 등을 통해 미국 경제에 약 320억 불(한화 35조 원)의 경제 효과와 30만 명 이상의 고용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Lake Mead National Recreation Area
미드호 국립휴양지에 들어선 후 167번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잘 포장된 2차선 왕복 도로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최근에 도로 포장을 새로 한 모양인지 아스팔트의 색깔은 아주 짙다. 그리고 노면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듯 소음조차 나지 않는다. 종종 빗줄기를 뿌려 대며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지만, 드라이브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이 길에서는 그 거대한 미드호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 황무지 너머 어딘가에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인공 저수지인 미드호가 푸른색을 빛내며 고여 있을 것이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으로 가는 도로


네바다와 애리조나의 경계가 되는 미드호는 1937년에 후버댐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길이 185km의 거대한 호수다. 그랜드캐니언을 지난 콜로라도 강물이 이곳에서 멈추면서 깊이 160m의 강물로 가득 차 있으며, 호수 표면의 면적은 640km2에 이른다고 한다. 작은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이런 엄청난 수치에 움츠러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소양호가 대략 70km2이고, 서울시 면적이 약 605km2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 호수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실감하기는 어렵다. 비행기라도 타지 않는 이상 이 호수를 한눈에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주변의 높은 곳에 올라도 일부분만 보이기 때문이다. 보트라도 타고 나선다면 그 넓이를 한껏 누릴 수 있으리라.

167번 도로
167번 도로를 따라 미드호 공원 북부 지역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달린다. 흐린 날씨 속의 평일이어서 그런지 도로가 정말 한산하다. 어쩌다 부지런히 달려온 차량에게 선두를 내어 주면 또 다시 한참을 홀로 달린다. 주변 풍경은 아직 단조롭다. 누런 황무지에 종종 붉은색의 토양과 바위가 서로 비껴가듯 달린다. 
잠시 후 창문을 열자 비에 젖은 대지의 흙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나쁘지 않은 냄새다. 우리나라의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유기물 가득 섞인 짙은 흙냄새가 아니라, 다소 싱거운 냄새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이곳 대지의 냄새인 것이다. 그리고 그 대지를 군데군데 덮고 있는 키 작은 나무와 풀들···. 구름이 없었다면 좀 더 짙은 색채를 보여 줄 테지만, 그다지 화려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황무지에서 화려함을 찾는다면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 구름이 야속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167번 도로를 따라 한참을 시원스레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불의 계곡 공원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이 도로를 타면 곧 공원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며, 그 풍경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게 된다. 좀 더 붉고 짙어진 듯한 대지의 색채, 좀 더 디테일이 높아진 듯한 지형과 바위산은 이제 막 주립공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잠시지만, 구름도 때맞춰 푸른 하늘을 열어 주고 있다. 그러자 대지의 색깔도 더욱 인상적으로 변한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있는 공원은 확실히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주립공원이라는 타이틀을 거져 얻은 것은 아닐 테니···.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도로


Valley of Fire State Park
공원으로 가다 보니, 기다란 간판이 붙어 있는 게 이곳이 불의 계곡 주립공원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수수한 듯 꾸밈없는 저 간판조차 이곳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 안으로 이어진 저 구불구불한 도로가 꽤나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얼른 그 위를 달려 저 깊은 안쪽으로 들어오게 만든 후 자신의 진목면을 자랑하고 싶은 듯하다. 못 이기는 척 조용한 그 길을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좌우로 또는 위아래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자 운전에 새로운 흥미가 생긴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간판


그렇게 몇몇 특징적인 이름이 붙은 바윗덩어리를 보며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방문객 센터 및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갈라진다. 그러나 방문객 센터에 들르지는 않는다. 그냥 이 도로를 타고 쭉 달리고픈 마음뿐이다.
이 공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이 scenic road가 이곳의 핵심 드라이브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문객 센터를 오른쪽 저편에 두고 오르막길을 따라 산을 살짝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바위로 둘러싸인 좁은 도로가 나타난다. 뭔가 관문을 통과하는 듯한 기분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그 너머에 웅장한 그림이 펼쳐져 있고는 하던데 말이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이런 때가 가장 신난다. 미지의 도로 끝에 뭐가 있을지 상상하는 것은 매우 중독적인 즐거움인데, 그런 면에서 미 서부는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간판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붉은 대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안내 지도


Scenic Road
붉은 바위에 둘러싸인 채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린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멋진 도로다. 
그렇게 산길 아닌 바위길을 빠져나오면 탁 트인 대지를 끌어안게 된다. 그리고는 작은 전율에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른다. 쭉 뻗은 채 저 지평선 너머로 달리는 도로와 그 양 옆에 펼쳐진 붉은 대지와 강렬한 지형 그리고 색깔···. 주립공원의 수준으로 확실히 인정할 만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 안쪽으로 향하는 도로


이 안쪽으로 들어오니 바깥보다 확실히 많은 차량이 눈에 띈다. 특히 첫 주차장에 서 있는 10여 대의 모터사이클 투어러들은 오토바이만큼이나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며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붉은 모래 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정말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미 서부를 여행하면서 수없이 보게 될 모터사이클 투어러지만, 그들의 멋진 라이딩과 자유로움은 언제나 최고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풍경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풍경

아직도 저런 오토바이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대학 시절, 넓은 교내와 오르막이 많은 지형상 우리 학교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전거는 힘에 부치고, 아직 자가용을 몰고 다닐 만한 시절이 아니었던 만큼 하숙집이나 자취방에서 학교를 오가는 데는 오토바이만한 게 없었다. 나도 잠시 타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 호주머니가 얇은 대학생들이 타고 다닐 만한 오토바이라고 해봐야 시커먼 매연를 내뿜고 소리만 요란했던 조그만 50cc의 택트 정도였다. 또한 그 당시에도 배달용으로 유명했던 시티 오토바이도 종종 볼 수 있었으며, 멋 좀 부린다면 125cc 정도는 타 줘야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스포츠카도 아닌 스포츠카 스타일이라는 말도 안돼는 광고 카피를 뿌려댔던 스쿠프만 타고 다녀도 오렌지족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였으니, 지난 젊은 날의 초상은 지금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작은 소유조차 만족스러웠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할리 데이비슨은 존재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거리에서 목격할 수도 있었다. 그 엔진 소리에 자지러졌던 그 시절은 이제 아주 먼 기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도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일그러진 명언은 이미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런 아련한 기억 탓인지, 지금도 저 엔진 소리에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침이 고인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풍경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풍경
불의 계곡 주립공원의 풍경과 도로


도로를 따라 더욱 안쪽으로 달린다. 붉은 대지 위를 가르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가 얼마나 인상적인가. 저 앞에서 휘청거리는 도로를 또 넘어서며 그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 마련된 주차장에 파킹한 후 우뚝 솟은 돔(Dome)을 구경하며, 이 공원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기억을 생성한다. 얼마 후 공원은 커다란 버스가 싣고 온 학생들로 북적거렸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 조용해서 생기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부러웠지만 H를 두고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아 적당한 높이에서 주변을 감상한다. 앞으로의 여정에 비한다면 여기서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훌륭한 풍경을 바라본 멋진 드라이브로 기억될 것이 확실하니까.

White Domes의 피크닉 구역
White Domes의 피크닉 구역
White Domes의 피크닉 구역


되돌아오는 길
이 공원에도 다양한 사이트가 있지만 많은 곳을 가지는 않았다. 이런 도로를 달리며 뭔가 놓칠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도로 그 자체로 충분히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런 드라이브 자체를 즐기면 되는 곳이니까. 
저기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듯한 몇 대의 수퍼카들이 이런 게 진짜 드라이브 아니냐며 줄지어 지나간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고급 스포츠카를 렌트해 주는 업체가 있으니, 카지노에서 대박이라도 나면 기분 좀 내 볼 수 있겠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저것은 그냥 지나가는 흔한 자동차일 뿐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닫는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을 빠져나가며


공원을 나와서 15번 주간도로를 타기 위해 서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그러다 마주친 탁 트인 평원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며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미 서부에는 아름다운 길도 많지만, 이렇게 지평선까지 이어진 도로를 바라보는 것은 단지 단순해 보이는 풍경을 넘어서는 훨씬 거대한 감성이 온 육신을 휘감고는 한다. 웅장한 조각 같은 지형도 좋지만, 이런 끝없이 평탄한 초원이나 사막 지형은 좁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평선을 뚫어 버릴 것만 같던 저 시원한 도로를 달린 후 비로소 15번 주간도로와 만난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달려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온다. 어제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드라이브였다. 내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라스베이거스에 며칠 머물게 된다면, 다시 이 불의 계곡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 그때는 좀 더 짙은 대지와 마주하고 싶다.

불의 계곡 주립공원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169번 도로의 풍경
불의 계곡 주립공원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가는 169번 도로의 풍경


한인마트
15번 주간 고속도로를 타니 라스베이거스에 금세 도착한다. LA 쪽에서 올 때 보이는 라스베이거스의 모습보다 이쪽 방향에서 대도시의 풍경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스트립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인마트에 들러야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식량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즉석밥도 더 사야 하고 또 반찬이나 과일 그리고 생수도 보충해야 한다. 
스트립에서 10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그린랜드 한인마트(Greenland Supermarket)로 차를 돌린다. 라스베이거스에 또 다른 한인마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규모도 제법 크고 또 다양한 한국 식품들을 구비해 놓고 있어 나는 항상 이곳을 이용한다. 

라스베가스의 한인마트 Greenland Supermarket


넓은 주차장에 파킹한 후 마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카트를 가득 채울 만큼의 식품들을 잔뜩 집어들기 시작한다.
매일 한 끼 이상은 먹게 되는 즉석밥은 여행 기간 중 가장 많은 양이 필요하므로 부피나 무게가 상당하다. 한국에서 올 때 많이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상당량을 구입한 후 비축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반입이 금지된 과일은 오래 보관하고 먹을 수 있는 두꺼운 껍질을 가진 오렌지나 자몽, 바나나 등으로 구매했다. 또 라면, 카레, 통조림, 김치, 건조식품 등과 커다란 생수통 및 작은 생수병 등으로 카트를 가득 채운 후 카운터로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마트에서 산 물건을 담아가기 위해 종이 봉투 또는 종량제 봉투를 사거나, 아니면 종이박스에 포장해 가져간다. 하지만 미국의 마트는 여러 비닐 봉지에 나눠 담아 준다. 구매 물품이 많을 때는 비닐봉지 수도 많아지므로, 집으로 가지고 들어갈 때 다소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나야 차 안에 보관할 터이니 별 상관은 없다. 
트렁크에 가득 찬 음식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한동안 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식품들의 맛이나 종류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 질리겠지만, 현지 음식들만으로는 버틸 수 없으니 이런 류의 간편식들도 여행 중에는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 준다. 
기와집처럼 생긴 한인마트를 뒤로하고, 다시 스트립으로 돌아간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밤
한인마트에서 사 온 삼계탕으로 든든한 저녁 식사를 한 후 가볍게 스트립으로 나선다. 더 이상 이곳저곳을 현란하게 이동하며 구경하지 않는 대신, 마실 나온 듯 가벼운 산책으로 스트립을 걷는다. 분수가 물을 뿜을 시간이 된 것인지, 호숫가에는 많은 사람이 호수를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으며 쇼를 기다린다. 마치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가끔 들려오는 한국어 소리에 잠시 반가움을 느끼며 그들의 여행은 어떤 모습이고 또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부디 더 먼 곳으로 향해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저 거리의 불빛을 촛불 삼아 이제 막 시작된 나의 여정에도 순탄함과 행복이 가득하길 가슴속으로 나직이 기원한다. 

라스베이거스의 밤이 금세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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