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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미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여행 루트 1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8. 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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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ing Las Vegas
그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봤는지, 안 봤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아무튼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하는 그 영화는 알코올 중독자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그곳의 창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떠오른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영화를 떠올린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읽은 것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일부 내용과 헷갈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 영화의 결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라스베이거스를 떠난다는 타이틀의 의미를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나도 오늘 라스베이거스를 떠난다. 떠난다는 것은 대부분 끝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캠프를 떠나 본격적으로 미 서부 안쪽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3일간의 적응과 휴식은 충분했다. 이제 먼 길을 달릴 시간이 왔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보다도 오늘이 더 설레는 것 같다. 
호텔 로비를 나와 차를 건네받은 후 구글맵을 실행한다. 오늘의 루트를 지정하고 모든 짐과 상황을 재정비한다. 그리고 화창해진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며 음악과 함께 캠프 라스베이거스를 떠난다. 여정의 중간에 이 베이스캠프로 다시 돌아오겠지만, 오늘은 오늘대로 짙은 아쉬움이 발길을 더디게 한다.

Grand Circle
오늘의 여정을 쓰기 전에 먼저 미 서부 여행의 주요 루트에 대해 아우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미국의 전형적인 서부 여행은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그리고 유타를 중심으로 주요 국립공원 및 관광지를 여행하는 루트를 말한다. 좀 더 좁은 의미로는 애리조나와 유타 지역으로 국한시킬 수도 있겠고, 실제로 우리가 미 서부에서 보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자연경관의 특징들이 이 두 개의 주에서 잘 나타나기 때문에 미 서부 여행의 핵심 지역으로 애리조나와 유타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 두 주(state)에 분포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공원 및 주요 관광지와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한데 묶어 흔히들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지역이라고 부른다. 애리조나와 유타가 만나는 도시, 페이지(Page)를 중심으로 북동쪽의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과 남서쪽의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을 포함하는 커다란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브라이스캐니언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Capitol Reef National Park), 캐니언랜드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 메사버드 국립공원(Mesa Verde National Park) 그리고 국립공원에 못지 않은 여러 국가 기념물(National Monument) 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굳이 이런 공원 타이틀로 구분할 필요 없이 이곳을 달리는 도로와 대지가 모두 거대한 국립공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느 곳 하나 위대하지 않는 곳이 없다. 서클(Circle)이라는 명칭은 정확한 영역을 고정할 수 없는 비공식적이고 상징적인 말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아무튼 그랜드캐니언을 대표로 콜로라도강 일대에 형성된 자연적인 지형 특성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고 또 말로도 형언하기 힘든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전 세계의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조차 평생에 한 번쯤은 이 지역을 두루 여행하고 싶어 한다. 이곳을 제대로 돌아본 자라면 분명 상당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발길은 필연적으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미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지역



미 서부 여행의 설계 – Small Circle Route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면서 그랜드캐니언 정도만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시간이 없다면 라스베이거스에서 경비행기나 헬리콥터 투어를 통해 단시간 내에 그랜드캐니언에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 여행에 비한다면 순간적인 짜릿함은 있겠으나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여행이라고 하기보다 구경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미 서부는 자동차를 타고 시간을 들여 구경하는 곳이다. 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 자체가 여행의 주된 목적이 되는 곳인 만큼 그런 식의 투어는 절대로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어디 가서 쓸데없는 말발이나 세우는 정도밖에 안된다.

시간을 좀 더 들일 수 있다면 차를 몰아 그랜드캐니언을 거쳐, 페이지를 지나 유타주의 브라이스 캐니언이나 자이언 캐니언 정도는 돌아볼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절해 보자. 그제야 비로소 미 서부 여행을 했다고 어디 가서 말할 정도는 될 것이다. 이렇게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작은 서클(circle)의 루트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2박 3일 정도다. 
아침에 서둘러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하면 대략 5시간만에 450km를 달려 점심때쯤 그랜드캐니언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오후를 그랜드캐니언을 감상하는 데 투자한다면, 대단히 아쉽겠지만 이 엄청난 공원의 수박 겉핧기 정도는 살짝 하는 셈이다. 그 후 피곤하겠지만, 다시 5시간 정도 밤길을 달려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 푹신한 침대에서 쉬면 된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한 정도라 좀 아득하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지겹고도 또 지겨운 경부고속도로에 비해 그랜드캐니언에 다녀오는 길은 생각보다 시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즐거운 드라이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운전과 절대 비교하지 말고 용기를 갖자. 시간이나 기타 상황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아 라스베이거스에서만 머물 수밖에 없는데도 그랜드캐니언에 꼭 한 번 가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이렇게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랜드캐니언은 하루 동안 왕복 1000km 가까이 운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와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한 시간만큼의 가치를 못 느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은 애초에 미 서부보다는 따뜻한 태평양 어느 해안가의 리조트를 가야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봐 오던 이곳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쏟아지는 감동과 형언할 수 없는 그 경이적인 풍경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때로는 미 서부의 많은 국립공원을 구경한 사람이 그랜드캐니언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말하고는 한다. 거대하기는 하지만 다른 디테일한 국립공원에 비해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그 크기와 깊이 그리고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저 시간 속의 침식(erosion)은 자못 비교당하기 십상이다. 그동안 들어온 명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아름다움을 함부로 비교하지 않는다. 양식이 다르고 또 개성이 다르므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디테일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각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석가탑이 100배 정도 커진다면 어떨까.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그 규모와 그것을 만들기 위한 시간의 역사라면 그것은 단순히 비교당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 당일치기라도 그랜드캐니언만은 꼭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역시 하루만 투자하기에는 시간의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따라서 그랜드캐니언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이곳에서의 예약이 만만치 않다면 좀 더 서둘러 페이지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유타주로 넘어가 브라이스 캐니언과 자이언 캐니언을 방문한다. 그랜드캐니언 지역의 숙소에서 잤다면 브라이스 캐니언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면 적당할 것이고, 다음 날 자이언 국립공원을 보고 오후 늦게나 저녁에 3시간 정도를 달려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또한 페이지에서 첫날밤을 보냈다면 브라이스 캐니언을 본 후 자이언 국립공원까지 다다른 후 이틀째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자이언을 구경한 후 역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면 된다. 
아무튼 2박 3일로 미 서부 루트를 하나 완성할 만한 수준은 이 정도다. 어느 곳 하나 마음 놓고 볼 만한 시간이 안된다. 살짝 맛만 보고 오는 정도다. 적어도 그 두 배인 4박 5일 정도는 투자해야 그마나 볼 만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다는 것은 서로 잘 알지 않던가. 아쉬움이 남기에 당신은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니 큰 걱정은 말도록 하자. 비록 3일 정도밖에 투자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당신에게 가장 위대했던 3일이 될 수도 있다. 국립공원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이미 말했듯이 도로를 달리는 자체가 구경이고 또 목적이 될 수 있다. 3일을 달렸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억과 경험을 이룬 것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트립으로 귀환할 수 있다.
이렇게 미 서부에 대한 시야가 한 번 트이면 좀더 세세한 일정을 설계할 실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지나쳤던 곳을 다시 찾아 방문하게 될 것이고, 더 멀리 그리고 더 크게 자신의 루트를 스케치할 것이며, 마침내 진정한 여행의 목적을 이룰 것이다.

미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루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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