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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미서부 루트 66(Route 66)을 달려 세도나로 가는 길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8. 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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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나(Sedona)로 가는 길
라스베이거스를 떠난 후 오늘의 종착지는 신성한 땅으로 알려진 세도나(Sedona)다. 지난 여행들에서 그랜드캐니언으로 급히 가느라 미처 들르지 못해 항상 미련이 남았던 곳이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500km로, 쉬지 않고 달리면 5시간만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이 경주가 아닌 바에야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93번 도로를 잇는 다리 위에서만 바라봤던 후버댐(Hoover Dam)도 이참에 직접 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좀 돌아가겠지만, 곧장 40번 주간도로를 타지 않고 루트 66(Route 66)을 달려 보기로 한다.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달릴 생각을 하니 마냥 흥미롭고 기대감에 벅차 오른다. 이런 기분이 살짝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서인지 운전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복잡한 도심지를 빠져나와 외곽으로 들어서니, 도로의 트래픽이 낮아지며 시원하게 길이 열린다. 그렇게 1시간여 만에 후버댐에 도착한다.

라스베가스에서 세도나로 가는 길



Hoover Dam
93번 도로를 빠져나와 후버댐으로 가는 접근로를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4km쯤 내려가면 후버댐에 도착한다. 후버댐에 진입하기 직전에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주차장 건물 및 카페 등이 보인다. 비록 유료 주차장이지만 방문객 센터와 댐 구조물까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댐을 건너가면 도로 주변에 무료 주차장이 여러 곳 있으므로 이를 이용해도 된다. 이곳에 주차하면 댐 구조물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미드호(Lake Mead)와 댐 그리고 93번 도로를 지탱하고 있는 아름다운 메모리얼 다리(Mike O'Callaghan–Pat Tillman Memorial Bridge)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평일인 목요일인데도 후버댐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역사적인 댐인 만큼 라스베이거스에서 머무는 관광객이나 나처럼 그랜드캐니언 방면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댐을 건너 오르막 도로 중간쯤에 주차를 하고, 푸른 미드호와 이를 막고 있는 거대한 후버댐을 바라본다. 


이 거대한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은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이 댐은 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 대공황 당시에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건설하기 시작해 1935년에 준공되었다. 이로 인해 거대한 인공 호수인 미드호가 생겨났다. 더욱이 댐의 수위 조절 기능이 있어 콜로라도강의 범람을 억제하고, 주변 지역에 풍부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콜로라도강은 이 댐이 건설되기 전부터 건조하기로 유명한 미 서부 지역의 중요한 물 공급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서부 지역의 발달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면서 더 많은 물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봄과 여름에는 수량이 풍부한 반면 콜로라도강 주변 지역의 농토가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또한 가을에는 수량이 너무 적어 물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댐을 건설하며 이런 여러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 이 댐은 세계 최대였으며, 20세기 초에 이룩한 토목과 건축공학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931년에 완공됐다고 하니, 미국은 그 시절에 이미 엄청난 공학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설계 능력은 아직 좀 부족하지만, 건설사의 시공 능력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8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 그 과거에, 이런 엄청난 구조물을 만들수 있었던 기술력과 앞선 문명 앞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35년 9월 30일,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준공된 이 댐을 방문해 연설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This morning I came, I saw and I was conquered, as everyone would be who sees for the first time this great feat of mankind.”

댐 자체만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엄청난 업적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댐이 막아 놓은 저 거대한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면, 굳이 공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구조물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비행기라도 타지 않는 한 저 미드호를 한눈에 넣을 수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비록 미드호 전체를 관망할 수 없을지라도 대략적이나마 그 실체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있다. 댐 구경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 길의 중간쯤에서 호수를 전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가는 도로가 갈라진다. 이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Lakeview overlook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넓은 미드호를 좀 더 바라보도록 하자. 댐에서는 좁은 계곡에 차 있는 호수를 볼 수 있을 뿐 넓은 미드호를 바라볼 수는 없기에 그런 아쉬움을 이곳에서 달래면 좋을 것이다.



이 거친 황무지 위에 저런 거대한 호수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하늘보다 더 파랗게 빛을 내고 있다. 맑은 하늘은 시야의 한계를 터무니없이 멀리까지 데려다 놓는다. 댐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이 전망대만 들렀다 가도 괜찮다. 평범한 여행 루트에서 미드호를 이렇게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니 말이다.




Route 66

다시 오른 93번 도로는 별다른 곡선 구간 없이 대체로 반듯하기만 하다. 태양을 마주보며 남쪽으로 달리는 이 길이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은 길은 의욕이 떨어진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
한참을 달려 Kingman시의 40번 주간도로와 만나지만, 이번에는 아직 오를 때가 아니다. 좀 더 있다가 다시 만나기로 하고 루트 66으로 갈아탄다. 

 


루트 66을 타고 달리면 40번 주간도로에 비해 제한속도가 떨어진다. 또 거리도 멀어질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차를 세우다 보면 1시간 이상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Interstate Highway에 반해, US Highway는 갓길에 정차하기 편하므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여행객은 될 수 있으면 이런 일반 고속도로에 올라서야만 세세한 부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40번 주간도로, 93번 도로, 66번 도로가 모두 만나서 그런지 킹맨(Kingman)시는 많은 자동차로 붐비고, 그만큼 주유소들도 많은 곳이다. 조금은 어수선한 듯한 이 도시를 빠져나가자, 드넓은 평원과 그 너머의 산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평원 위의 집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전해 준다. 


이 도로와 저런 목조 주택만 제외한다면, 몽골의 어느 초원에서 보던 풍경과 사뭇 비슷하다. 분명 유사한 대지와 하늘, 지형과 식생 등 이 풍경을 구성하는 것들은 서로 다를 것이 없는데도 인간의 고정된 정착이 이루어졌느냐와 그렇지 않았느냐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따스함은 이쪽이지만, 경외적인 고독스러움은 그쪽이 훨씬 진하다.
아무튼 이런 풍경을 양 옆에 두고 달릴 수 있으니 이 드라이브가 얼마나 상쾌한지 모르겠다. 도로 오른쪽에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기찻길이 도로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위를 도대체 몇 칸인지 세기도 힘든 기다란 화물열차가 지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달리고 있다. 아마 100칸은 족히 되리라. 아이다호(Idaho)주 어디선가 기차 건널목에서 신호에 걸려 저런 기차의 화물칸을 세어 보니, 100칸이 넘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강원도 오지에서 지질조사를 하다가 지나가는 화물열차의 wagon 수를 맞히는 내기를 하고는 했다. 보통은 예측보다 많았던 적이 빈번했기에 서로 놀란 적이 많았던 듯하다.



이 모든 풍경이 여행객의 눈에는 그저 평화롭고 풍족해 보인다. 100년 전, 200년 전, 어쩌면 이 땅을 딛고 서부로 나아가야만 했던 이주자들에게는 고통스러웠을 거친 땅인지도 모르겠다. 짐마차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희망을 끌어안고 이곳에 왔을 서부 개척시대의 한 가족의 모습이 아련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미국의 심장을 관통하며 서부로 가는 길을 빠르게 열어 준 루트 66(Route 66)이 1926년 11월 26일에 완공되었다.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연결되는 길이 약 4,000km의 이 고속도로는 미국 최초의 대륙 횡단도로다. 그리고 당시 미국 경제 불황기와 맞물려 캘리포니아 드림을 좇아 동부에서 서부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이주민들이 거쳐 갔던 주요 이동 경로이기도 하다. 그렇게 수많은 이의 추억이 서려 있던 이 루트는 세월이 흐르며 더 빠른 고속도로들이 개통되자 이곳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면서, 1985년에는 고속도로의 지위를 잃고 다른 도로에 편입되는 등 지도상에서도 공식적인 명칭이 지워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루트 66을 여전히 그리워했고, 이로 인해 복원 사업이 진행되어 2003년에 Historic Route 66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다시 만났다. 
비록 주간 고속도로에 비해 이동성은 떨어지지만, 도로를 달리는 기쁨을 선택하는 많은 여행객에게 여전히 추억과 낭만 그리고 여유로운 풍경을 선사해 주며 그 존재 이유를 각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주자나 여행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던 이 도로가의 상점들은 이제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며 박물관처럼 추억 여행을 선사하는 곳도 있다. 이렇듯 낡았지만 옛시절의 낭만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가게들은 여전히 향수를 잊지못하는 여행객들에게 소중한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Hackberry General Store
그렇게 역사적인 이 루트를 달리다 보면 마을도 아닌 황량한 길가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가게 하나를 보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세워진 건물인 듯 매우 낡아 보이지만, 그런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수많은 스티커와 마커로 도배하다시피 뒤덮여 있다. 그리고 이제 달릴 수 없지만, 자동차의 역사를 보여 주는 듯한 오래된 낡은 차들과 주유 펌프 등이 시간의 변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유물처럼 전시되어 있다.


언제 오픈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루트 66을 여행하던 아티스트 “Bob Waldmire”가 운영했다고 한다. 이 가게는 상당히 낭만적인 추억과 물품들로 가득 채워진 채, 이곳을 지나는 많은 여행객에게 작은 휴식과 함께 오래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곳은 이제 여행객들이 수없이 셔터를 누르도록 만드는 유명한 사이트가 되었다.
가게 앞에 먼지가 날리는 공터가 있는데, 이곳에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런데 이미 여러 차량과 오토바이가 그 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홀로 서 있는 가게치고는 상당히 많은 방문객으로 붐비기에 이곳의 인지도를 짐작케 한다. 
가게 밖의 소품들도 재미있지만 그 안은 더욱 아기자기하다.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수 그리고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는 내부는 작고 비좁지만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사진 찍는 여행객들로 꽉 들어차 있다. 수십 년 전의 문화를 짐작케하는 소품들과 사진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실내는 그 시대를 살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 그 시절 미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했을 리 만무한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상당히 흥미로운 공간이다. 게다가 좀 어둡기는 하지만 원색들로 가득해서 그런지 사진도 잘 나오는 듯하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들에게 더욱 아련한 공간인지, 하얀 백발의 노인은 소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바라보며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예전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1990년 대 중반을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 어쩌면 회오리치는 변화 속의 문화와 사상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기숙사 사감의 안내 방송을 듣고 부리나케 복도를 뛰어가 눈빠지게 기다리던 전화를 받던 미팅의 추억이나, 암호 같던 숫자로 감정을 전달하던 삐삐의 아날로그적 감성에 눈물을 글썽이며 웃음지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에도 별로 슬프지 않았을 만큼 그리 열성적이지 않던 대중가요지만, 어느 추운 겨울밤에 라디오를 통해 느닷없이 들었던 김광석의 부음은 남의 일이 아닌 듯 너무나 애처롭게 들려왔다. 서른 살을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김광석의 노래를 들어도 그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그 나이에 들어서자, 그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사이였는데도 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즈음의 상념을 그의 노래와 더불어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희노애락이 깃든 모든 추억은 다 아프다. 지나간 일들이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련한 듯 유쾌한 이 가게를 빠져나와 다시 루트 66에 올라선다. 그렇게 크게 달라지는 것 없는 풍경이지만, 질리지 않는 평화로운 66번 도로의 드라이브는 그랜드캐니언의 하바수 폭포(Havasu Falls)로 가는 18번 인디언 로드 (Indian Rd 18)를 지나치면서 계속된다. 지금은 저 도로를 탈 수 없기에 입맛만 다시며 지나간다. 웬만한 작심으로는 가 보기 힘든 곳인 만큼 언젠가 꼭 가 보겠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바수 폭포를 보려면 이 분기점에서 1시간 반을 달려 100km의 도로 끝에 있는 트레일 헤드(Trail Head)로 가야 한다. 그곳에 주차한 후 결연한 의지로 가방을 매고 15km 떨어진 하바수 폭도까지 서너 시간을 걸어가야만 비로소 다다를 수 있다. 자동차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 깊은 그랜드캐니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평범한 여행객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특권인 양 진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어느 국립공원에 가더라도 이런 위대한 하이킹 코스와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 서부에 아무리 많이 와 봤다고 한들, 그 누구도 자신의 여정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곳이지 않겠는가.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루트 66 위의 드라이브도 어느 덧 끝나 가고, 다시 40번 주간도로와 만난다. 아름다운 미 서부의 도로는 정말이지 시간을 잘도 갉아먹는다. 제법 지체된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호쾌하게 뻗은 주간도로를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Sedona에 다다르며
그랜드캐니언으로 올라가는 익숙한 64번 도로를 지나쳐 플래그스태프(Flagstaff) 즈음에 다다르자 날씨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17번 주간도로로 갈아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와이퍼를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도록 해봤지만 시야가 좋지 않다. 마치 갑작스레 밤이 찾아온 듯하다.
원래는 89A번 도로를 타려고 했으나 구글맵은 주간 고속도로를 고집했고 또 출구를 못 찾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녀석이 시키는 대로 17번 주간도로를 유지해야만 했다. 나쁜 선택은 아닌 듯하다. 이런 날씨에는 차를 몰아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 그 도로보다 주간도로가 안정적일 터였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 세도나를 떠나면서 89A 도로를 타고 나올 것이니, 시간이 부족한 오늘은 구글맵을 믿고 차를 몰아 간다.
세도나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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