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edral Rock에서의 일몰
세도나에 가까워지자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편 구름 사이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새어 들어와 대지를 비추자 안도감과 함께 오늘의 목적지에 오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 햇빛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시간이나 남았을까. 루트 66을 달리면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더니 세도나로 입성하는 시간이 상당히 늦어졌다.
세도나에 들어서자, 붉은색 바위산과 푸른 초원의 대지가 강인한 인상으로 눈에 들어온다. 처음 밟아 보는 땅이라 그런지, 먼 길을 달려온 하루의 끝머리지만 다시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 찬다.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세도나의 Cathedral Rock이다. 이곳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 원래 계획이다. 얼마 남지 않은 구글맵의 지도를 보며 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푸르게 드러난 하늘만큼이나 뚜렷해지는 세도나의 모습에 뭔가 알 수 없는 특별함이 느껴진다.
구불구불 좁은 도로를 타고 지도가 이끄는 데로 들어가니 Cathedral Rock으로 가는 트레일 헤드(Trail Head)가 나온다. 그리고 협소하지만,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한가로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와 하이킹의 시작점에 설치된 안내판의 지도를 보며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 본다. 이곳에서는 이미 너무 기울어 버린 태양이 잘 보이지 않아 시간을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밝기로 봐서는 대략 1시간 남짓 남은 것 같다. 온전한 낮은 30분도 채 남지 않은 듯했고, 일몰 후에도 아직 지평선 너머에서 햇빛이 넘어올 테지만 완전한 어둠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다. 이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내일은 내일대로 일정이 많다. 이곳에 온 김에 마무리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세도나에서의 일몰을 볼 시간은 지금 뿐이니 마음을 다잡고 길을 나선다.
배낭에 생수와 육포를 넣고 트레일에 올라선다. 시간이 없어서 조금 초조했을 뿐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긴 코스의 하이킹은 아니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기에 출출한 배를 달래 줄 육포를 챙긴 것 뿐이다.
정면에는 Cathedral Rock이라는 이름이 붙은 우뚝 솟은 붉은 암석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이지만, 저 중간의 경사진 암석지대가 왠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시작은 가벼운 오솔길을 걷듯 수월했다. 그 후 다다른 중간 지대는 좁은 바위틈과 높지 않는 절벽을 기다시피 올라가야만 했다. 대체로 성인 남자라면 모두 오를 수 있겠지만 여자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코스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팔을 내밀어 도와준다면 저 앞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년부부처럼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릴지언정 포기할 길은 아니다.
뒷따르는 팀은 없다. 두 팀 정도 우리와 스쳐 지나며 내려갈 뿐이다. 올라갈 시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빠른 발걸음에 숨이 찼지만, 점점 다가오는 어둠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힘에 부친 H를 잠시 쉬게 한 뒤 마지막 급경사를 뛰다시피 올라 마침내 트레일의 끝에 다다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렇게 산을 뛰어올라갔던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발 아래는 절벽이다. 그리고 저 앞으로 세도나의 성스러운 땅이 푸르게 펼쳐지고, 그 너머 지평선에는 구름 사이로 저무는 태양의 화려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구름 때문에 온전한 일몰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 제법 분위기 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가뿐 숨을 돌리기도 전에 사진을 찍는다. 모든 것이 급하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H를 데리고 가파른 암반을 내려가는 일은 상당히 위험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을 눈에 담고 느껴 보고자 신경을 집중한다. 점차 가뿐 숨이 잦아든다. 곧 어둠이 몰려올 이 일몰의 순간에 저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내일도 세도나를 돌아보겠지만, 이 순간이 세도나에서 첫 손가락에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다.
그런데 혼자 뿐인 줄 알았던 이 공간에 나는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저 절벽 위 고요한 명상과 함께 일몰을 바라보는 한 서양인 커플이 책상다리를 한 채 꽤나 동양인다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 곳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 역시 지금의 이 순간과 공간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 둘이 앞으로 어느 곳을 바라볼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는 깨닫게 해주었다. 홀로 기다리고 있을 H에게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
일몰을 가슴에 녹이기에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둘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에 더 괴로워하며 서둘러 내려간다.
저 아래서 애처롭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원래 혼자였다면 모를까, 이 위대한 순간과 공간도 함께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진으로나마 저 위의 가치를 보여 주며 서둘러 내려간다.
그 순간 어떤 젊은 일본인 커플이 올라온다. 당황스럽다. 내려가도 시원찮을 이 시간에 이제야 오르고 있다니···.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그들은 그렇게 지나쳐 간다. 잠시 후 다시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구불거리는 길 사이에 가려졌는지, 아니면 어스름해진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면서도 계속 그들이 눈에 밟힌다. 이 시간에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 내막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그들은 이 순간에 이곳을 오르고 있지 않았어야 했다. 랜턴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남자도 여자도 산행과는 익숙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주차장에 다다르며 다시 저 바위산을 뒤돌아본다. 한 커플이 가볍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절벽 끝의 그들이다. 그 둘은 최후의 시간에 때를 맞춰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뒤로 좀전의 그 일본인 커플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동양인이었기에 더 걱정스러운 것일까.
주차장에 다다르자마자 어둠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더욱 짙어진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어둠 속을 분별해 줄 뿐이다. 그들을 걱정하는 것이 기우일 뿐이기를 바라며 못내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랜다.
The Inn above Oak Creek
7시가 살짝 넘었다. 오늘 묵을 숙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어둠이 내린 후라 거리의 모습을 뚜렷이 인지할 수는 없지만, 매우 고즈넉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조용하기는 하지만 곳곳의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불빛이 이곳의 평화로운 정서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너무나 조용해서 차 소리조차 미안하게 느껴진다. 신성한 인디언의 땅을 차지한 서양인들이지만, 그들 역시 이 땅의 성스러움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세도나에는 유명한 스파와 숙소가 많지만, 내가 머무를 곳은 적당히 저렴하고 분위기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괜찮은 선택인 듯하다. 빈방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이리저리 비교하며 선택할 만한 옵션이 내게는 없었다. 그렇게 예약한 아담한 방 하나는 비록 작지만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무엇보다 아담하게 마련된 테라스 너머로 흐르는 개울의 물소리가 이 성스러운 땅에 찾아온 어두운 밤에 유일하게 허락받은 소리인 듯 청명하다.
이런 작은 인(Inn)은 방이 많지 않기에 저녁때가 되면 직원은 퇴근한다. 그러면서 늦게 온 손님들을 위해 방 열쇠를 숙박과 관련된 안내 사항과 함께 봉투에 넣어 놓고는 한다. 이때 직접 마주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놓기도 한다. 나 역시 잠그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그렇게 봉투를 챙긴다. 직원의 권리도 또 나의 권리도, 이렇듯 무리없이 보장되는 융통성이 마음에 든다.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트립어드바이저를 탐색해 칭찬을 많이 받는 이탈리안 식당을 찾아간다. 오늘 밤은 피자가 당긴다. 세도나의 정체성을 담으려는 듯한 명칭의 볼텍스(Vortex) 피자 한 판을 푸짐하게 먹고 난 후 비교적 만족스러운 여운과 함께 개울가의 숙소로 되돌아온다.
밤이 되면 싸늘해지는 이런 날씨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기후다. 뜨거운 물로 하루의 피로를 씻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차 한 잔과 함께 오늘과 내일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마무리다.
오크 크릭(Oak Creek)에서의 아침
이 성스러운 땅을 가로지르는 Oak Creek은 세도나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그리고 건조한 붉은 땅이 푸른 숲으로 뒤덮을 수 있도록 수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새벽녘에 창문을 세차게 때리던 비도 모두 그쳤다. 이제 세도나의 아침은 선선함과 함께 무척이나 화창한 날씨를 보여 주고 있다. 어젯밤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오크 개울가로 다가가 맑은 시냇물에 손을 담그며, 그 차가움과 깨끗함에 정신을 차린 후 아침을 먹기 위해 로비로 간다.
작은 응접실은 아늑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개의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고, 간단한 빵과 과일이 조식으로 마련되어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콘티넨털 조식(Continental Breakfast)이 푸짐할 리 없지만, 고즈넉한 개울가의 어느 아늑한 인(Inn)에서 여행자의 소박한 마음으로 한 끼 해결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다. 어젯밤에는 쥐죽은 듯 고요했던 이 숙소도, 이렇게 아침이 되니 하나둘 응접실로 나와 조용히 아침을 먹는 손님들로 채워진다. 서두르는 사람 하나 없이 이곳의 평화로움을 묵묵히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도 소곤거리며 오늘의 일과를 들춰본다. 날씨만큼이나 몸도 마음도 개운한 오늘 아침은 지난 어느 날들의 아침보다 충만한 기운으로 다가온다. 세도나의 성스러운 에너지 덕분인가···.
세도나의 역사
이 땅은 대대로 인디언의 영혼이 가득한 성스러운 대지였으나, 서부 개척시대를 거치면서 원주민이던 야바파이(Yavapai)와 아파치(Apache) 인디어들은 먼 남쪽의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 후 백인 목장주들이 정착하면서 백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세도나(Sedona)라는 지명도 이곳에 최초로 부임한 우체국장의 부인(Sedona Arabelle Miller Schnebly, 1877~1950)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녀 역시 초기 정착민으로서 세도나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그 후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행객과 은퇴자들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섰고, 점차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세도나가 휴양지로서 유명세를 떨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중 온화한 기후와 붉은 사암(sandstone)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암벽과 봉우리들이 어우러진 푸른 대지의 조화로운 풍경도 있겠지만, 암석 속에 포함된 철 성분으로 인해 전자기적 에너지(Vortex)가 방출되어 미국 전역에서 가장 영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곳이라는 명성이 퍼지면서 이를 체험하기 위해 몰려드는 방문객의 역할이 크다. 아무튼 이런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지는 개개인의 몫이지만,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이 성스럽게 여겼던 땅인 만큼 평범하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는 곳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그리고 곳곳에 부유층이 소유한 아름다운 대저택과 고급 휴양 시설이 가득한 것을 보면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Bell Rock
숙소를 나와 그 충만한 영적 에너지를 받아 보고자 가장 강한 Vortex를 방출하는 곳 중에 하나인 벨락(Bell Rock)으로 차를 몬다. 여러 상점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세도나의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179번 도로를 따라 가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는 Red Rock Scenic Byway 구간이 나타난다. 길지는 않지만,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에 감탄하며 운전하다 보면 곧 Bell Rock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을 하면 트레일 헤드(Trail Head)의 주차장이 나타난다.
하이킹 코스는 다양하다. Bell Rock 중턱까지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좀 더 욕심을 낸다면 Bell Rock 주변을 한 바퀴 돈다든지 또 그 옆의 Courthouse Butte를 포함하는 루프 트레일(Loop Trail)을 따라 하이킹을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진 시간만큼, 마음이 따라가는 만큼 걸으면 된다. 어제 경험했던 Cathedral Rock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가벼운 산책일 것이다.
특별히 어떤 코스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Bell Rock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다. 종종 트레일이 사라져 애먹었지만, 오르락내리락 바위를 넘나들며 사방의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영적인 충만함은 잘 모르겠다. 원래 그런 것은 믿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혜가 아니겠는가. H는 뭔가 느낀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듯했다.
Bell Rock의 모습도,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더할 나위 없지만 오늘의 날씨가 특히 마음에 든다. 어젯밤에 내린 비는 더욱 깨끗하고 상쾌한 대기를 느끼게 해 준다. 이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붉은 바위산을 끌어안으니, 내 자신조차 스스로 영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Bell Rock 주변부의 어느 넓은 공터 같은 바위 지대 위에서 따스한 햇빛을 맞으며 누워 있다. 우리도 함께 그들처럼 누워 본다. 이미 햇빛에 달궈진 이 평평한 바위 공터는 등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했고, 하늘에 떠 있는 오전의 태양은 온몸에 따사로운 햇살을 드리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정말 완벽한 대지와 대기 그리고 그 사이에 누워 있는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에 젖는다. 어느 화창한 봄날의 기억도 이보다 더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이곳에서 낮잠을 자는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싶다. 가진 자만이 아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그 평범한 특권을···. 그런 특권은 대부분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경우가 많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키며 이곳의 평화로움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주차장으로 간다. 세도나에서 느껴야 할 것은 거대한 국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그 경이적인 모습과 풍경이 아니다. 그 정도의 장관은 이곳에 없다. 여기는 눈으로 즐기기보다 정신과 마음을 보듬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Chapel of the Holy Cross
Bell Rock에서 나와 차를 몰아 오던 길을 다시 달려 신성한 십자가를 보기 위해 방향을 잡는다. 채플이 놓여 있는 언덕 위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도로 끝과 도로가에 일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마저 여유롭지는 않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주차하면 언덕을 올라 채플까지 가는 동안 땀을 좀 흘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언덕에 오르면 이렇게 조그만 채플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구경을 오는지 한눈에 깨달을 수 있다. 이곳은 무척이나 멋진 공간이자 감성이 베어 있는 장소다. 언덕 위의 공간은 좁지만, 그 아담한 장소에 어울리는 소박한 예배당과 또 거기서 내려다보는 주변의 탁 트인 풍경은 최고로 꼽아도 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이런 훌륭한 명당자리에 이토록 잘 어울리는 단촐한 예배당이라니···.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창틀처럼 만들어진 큰 십자가와 창문을 통해 따스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밖과는 달리 이곳에 들어온 관광객들은 차분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자신과 십자가를 연결한다. 이런 성스러운 분위기는 위압적이지 않으며, 대중을 자연스럽게 지배한다. 종교를 떠나 이런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든다.
옆으로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놓여 있다. 좁은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어 다소 혼잡해 보이지만, 무엇이 있는지 조심스레 내려가 본다. 그곳에서 작지만 깨끗하고 아담한 기념품 가게가 반기고 있다. 이런 기념품들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욕심이 나지는 않지만, 이 공간만은 정말 욕심이 난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북적이는 관광객을 제외한다면 수양을 하든,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지 간에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런 고독을 이겨 낼 수 있는 경건한 향기가 배어 있는 느낌이다.
다시 예배당 밖으로 나가 주변을 찬찬히 감상한다. 저 아래 보이는 화려한 대저택도, 저 멀리 붉은 암벽과 산들도, 골목골목 반듯하게 세워진 건물들도 하나같이 이 공간을 흩뜨리지 않고 관광객을 만족시키고 있다. 그 커다랗고 화려한 대저택의 안락함이 무거운 탐욕을 잠시 불러일으켰지만, 이 모든 풍경을 위로 삼아 발길을 돌린다.
약간의 하이킹조차 싫은 사람이라면 미 서부에 올 이유가 없겠지만, 혹시라도 세도나에 와 있거든 성스러운 십자가가 놓여 있는 이 예배당만이라도 와 보도록 하자. 그런 다음 다운타운에서 갤러리도 구경하고 또 맛있는 음식과 차를 마셔도 되니 말이다.
Airport Mesa
예배당을 나와 세도나에서의 마지막 여정지인 Airport Mesa로 향한다. 이곳도 강한 Vortex로 유명한 포인트지만, 도로가에 마련된 주차장은 이미 방문객들이 꽉 들어차 내 차가 들어설 곳이 없다. 그렇게 도로 위를 더 달려 공항 입구에서 잠시 세도나의 풍경을 담은 후 발걸음을 돌린다. 오늘 여정이 긴 만큼 더 이상 지체하기도 어렵다.
세도나에서의 짧은 시간이 많이 아쉽다. 모든 곳을 완벽히 설계할 수 없는 것이 여행이지만, 유난히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세도나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숙제를 남긴다.
세도나를 뒤로하고
관광객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몰리는 세도나의 다운타운을 지나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과 카페 그리고 갤러리를 보고 있자니 떠나는 마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곳 어느 주차장에 차를 버려 두고 저 거리를 좀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계획이 불완전했던 탓에 이곳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휴양 도시에 왔는데도 휴양하지 않는 짧은 구경은 차라리 오지 않은 것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 여정이 급하다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겠다면 일정을 좀 더 여유 있게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미리 알았더라면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미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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