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에서 페이지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늘 달려야 할 거리를 가늠해 본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무척 중요한 경유지가 있기에 마지막 종착지인 페이지(page)까지 약 400km를 달리는 동안 너무 늦지 않도록 시간 분배를 잘 해야 할 듯하다.
우선, 89A번 도로를 타고 세도나를 빠져나가 플래그스태프(Flagstaff)에서 180번 도로로 갈아탄 후 그랜드캐니언까지 올라갈 계획이다. 40번 주간도로를 타고 윌리엄(Williams)에서 64번 도로로 빠져나가 북상해도 되지만, 이 루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랜드캐니언에 갈 때 주로 이용하는 루트다. 이미 익숙한 루트인 만큼, 이번에는 Coconino National Forest를 관통하는 180번 도로를 달리며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싶다.
그렇게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로 가서 몇 군데를 돌아본 후 그랜드캐니언의 South Rim을 이어 주는 그리운 64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후 그 끝에서 만나는 89번 도로를 타고 페이지로 향할 것이다. 페이지 인근의 나바호 다리(Navajo Bridge)나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는 다시 들러도 여전히 절경일 테지만 시간에 따라 선택해야 할 듯하다.
Oak Creek Vista on 89A
어제 오후에 세도나로 가면서 17번 주간도로를 타고 돌아갔던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전날 이 89A번 도로를 탔더라면 이런 감흥도 반감되었을 것이다. 물론 어제는 어제대로 첫 감동이 있었을 테지만, 비 내리는 흐린 날보다는 오늘같이 화창한 날씨 속에서 달리는 것을 즐기고 싶다.
도로는 Oak Creek을 옆에 두고 울창한 숲속을 구불거리며 뻗어 있다. 창문을 연다. 짙은 숲 내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건조한 사막의 끝없는 도로를 달리면서 느끼는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 숲을 달리는 기분일 것이다. 어떤 곳이 더 좋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곳의 모든 도로는 제각각 뚜렷한 매력이 존재한다.
이런 도로는 정말이지, 느긋하게 운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뒤차가 다가서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듯하다. 드라이브란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욕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숲에 취해 달리다가 갑작스레 한계령 도로처럼 구비구비 한참을 올라가는 고갯길을 맞닥뜨린다. 이 고갯길을 모두 올라간 후에는 이 도로를 따라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이런 길이 도대체 왜 생긴 것인지를 이곳의 지형에 빗대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도로를 올라오는 동안에는 그 끝을 짐작할 수 없기에 상당한 스릴과 흥분이 온몸을 감싸게 된다.
설악산은 등산에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산이지만, 이 산을 동서로 넘어가는 북쪽과 남쪽 두 도로의 험난한 드라이브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어느 날씨 좋은 따스한 봄날이나, 단풍 든 가을에 이 두 도로를 따라 설악산을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는 가히 최고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북쪽의 미시령 구간은 터널이 개통된 후 예전의 낭만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숲과 계곡을 달리던 그 도로의 추억이 이 순간 미국의 도로에서 묻어나는 것은 두 곳 모두 비슷한 감성을 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듯 하다.
창자처럼 구불거리는 이 도로의 끝에 다다르자 이내 평평한 지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전망대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열려 있다. 이 도로를 따라 잠시 들어가면 상당히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에 주차를 한 후 전망대를 향해 걷다 보면 깨끗한 화장실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의 좌판이 트레일을 따라 질서 있게 늘어서 있다. 대부분 인디언의 후예들로 보이는 그들의 인상은, 비록 그 뒤에 고단함이 있을지 몰라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의 시장에서도 만날 법한 그런 고급스럽지 않은 장식품이 더욱 정겨운 것은, 어쩌면 그들의 삶도 우리네 시장의 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좌판을 지나 길게 이어진 트레일을 잠시만 걸어가면 매우 훌륭한 전경이 펼쳐진다. 그 아래로는 거슬러 올라왔던 Oak Creek이 구불구불 도로와 함께 흘러가고 있고, 또 양 옆으로 솟은 산들이 이를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이런 전망은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더욱이 심하게 커브를 그리며 올라왔던 도로의 선형마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전망대의 끝에 서지 않았다면 이처럼 거슬러 올라온 드라이브의 자취를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 서부의 수많은 도로를 달리다 접하게 되는 이런 전망대의 친절한 서비스에 눈물마저 흘릴 듯 고마운 생각이 들고는 한다. 자동차 그리고 도로 문화의 발전과 수준은 이런 곳에서도 드러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미 서부야말로 자동차 여행의 정점이다.
Coconino National Forest 속의 180번 도로
계곡에서 산(쉽게 설명하기 위해 산이라 칭했지만 사실은 산이 아니다. 또 다른 plateau 위로 이동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기는 하다. 다음 기회에 이에 대해 보충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위로 올라온 후의 도로는 삼림 속을 제법 평탄하게 뻗어 나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래그스태프(Flagstaff)시에 도달한다. 해발고도 2,100m의 이 도시에 머물렀던 적은 없다. 하지만 언뜻 스쳐 지나가는 모습 속에 잠시 머물 만한 휴양지로서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 도시 북쪽에는 애리조나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Humphreys Peak(3,851m)가 있고, 그 서쪽 기슭에는 스키 리조트가, 북동쪽으로는 Wupatki National Monument가 있어 누군가의 여정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의 일정에는 들어 있지 않다.
이들과의 조우는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 180번 도로를 타고 북으로 올라간다. Williams시 근처에서 분기되는 64번 도로와 비교해 이 180번 도로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를 많이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64번 도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훌륭하다.
역시 국유림이라는 타이틀은 아무 곳에나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세도나에서 플래그스태프 사이를 달리며 보았던 남쪽의 Coconino 국유림 지역보다 180번 도로가 관통하는 이 북쪽의 Coconino 국유림이 한 수 위의 풍경을 보여 주는 듯하다. 게다가 플래그스태프에서 멀어지자 지나가는 차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국유림의 호젓한 감성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64번 도로는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많은 차량으로 붐비지만, 이쪽 루트는 도로를 전세 낸 듯 정말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도로 상태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US Highway인 만큼 훌륭하게 관리되어 있고, 최근에 다시 포장을 했는지 흠집도 없는 폭신한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구간도 많다.
왕복 2차선의 잘 닦인 도로와 주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삼림과 들판, 고즈넉한 농가와 풀을 뜯는 소들···. 한 폭의 완벽한 그림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물에 무척 만족해 하며 드라이브를 이어 간다. 아무리 좋은 길도 반복하다 보면 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역시 가 보지 않을 길을 달리는 것이 최선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그 순간 처음 달리는 길이다.
Mather Point
이처럼 한적한 드라이브도 180번 도로가 64번 도로와 만나면서 아쉽게 끝이 난다.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차량들로 제법 트래픽이 높다. 그러나 그랜드캐니언으로 간다는 설렘으로 오갔을 수많은 여행객의 마음처럼 언제나 이 길은 가벼운 흥분을 전달해 주고 있다. 차량들이 꼬리를 물게 하는 저 느린 캠핑카도, 승객을 잔뜩 실은 저 버스도, 두 바퀴로 가는 저 자전거도 거대한 종착지를 향해 북으로 또 북으로 열심히 달려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급박한 추월도 굳이 필요치 않다. 병아리들처럼 앞차만 따라가지만 이곳에 지각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미 서부 여행에서 그런 개념은 아예 없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순간, 여기가 당신의 목적지니까.
어느덧 투사얀(Tusayan)시에 도착한다. 그랜드캐니언 방문객들은 대부분 이곳에 조성된 여러 숙박 업체와 식당 등을 이용하게 된다. 국립공원 안에도 숙소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예약이 쉽고 또 비용도 낮은 이곳을 선호한다. 굳이 그 안에 묵지 않아도, 이 마을은 베이스 캠프로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더욱이 식료품 가게가 있어 간단히 장을 본 후 음식을 해먹기도 괜찮고, 아시안 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으니 그 많은 양과 짭조름한 맛에 놀라며 한 끼 해결할 수도 있다.
투사얀에서 대략 10km 정도 북상하면 드디어 그랜드캐니언의 방문객 센터 구역에 다다르게 된다. 상당한 규모의 주차장과 방문객 센터가 자리 잡은 이곳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처음 발을 딛는 그랜드캐니언의 관문이다. 이 구역에 차를 파킹한 후 안내판을 따라 잘 조성된 트레일 위를 500m가량 걸어가면 그랜드캐니언에서 가장 유명한 전망대인 Mather Point에 도달한다. 이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거쳐 가는 곳이자,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보아 왔던 그랜드캐니언의 풍경을 담은 대표적인 전망대다. 그런 만큼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랜드캐니언을 전망할 수 있는 곳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여기 방문객 센터 및 Mather Point로 이루어진 구역과 서쪽의 그랜드캐니언 빌리지(Grand Canyon Village) 구역을 포함하는 South Rim은 그랜드캐니언을 대표하는 곳이자, 외국인 관광객을 대부분 흡수하는 중추적인 지역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흔히 이용하는 버스 투어를 이용해 패키지 여행을 할 때는 대부분 이 Mather Point를 찍고 돌아가게 된다. 알다시피 그런 투어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잠시 구경을 하고 또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질 뿐이다. 곧 다시 승차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미 서부는 동남아의 어느 도심을 투어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식의 여행으로는 이 먼 곳까지 많은 돈을 들여 온 보람을 느낄 수 없다. 물론 누구나 렌터카를 빌려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단체 버스 투어를 하더래도 유럽인들처럼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 여유로운 투어가 되어야 한다. 이 엄청난 국립공원은 마치 Mather Point가 전부인 양 외마디 감탄사를 던지고 정신없이 사진 촬영을 끝마치며 스쳐 지나갈 만한 그런 스케일의 자연이 아니다. 북쪽(North Rim)과 서쪽(West Rim) 구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오갈 필요도 없이, 여기 남쪽(South Rim)의 주요 구역만 하더라도 이성의 끈을 놓을 만큼 아름답고 경이적인 풍경을 간직한 포인트가 즐비하다. 다시 말해, 온종일을 South Rim 구역에 쏟아부어도 턱없이 부족한 곳이 바로 여기다. 전문가적인 하이킹 코스를 제외하더라도 며칠을 머물러야 비로소 만족할 만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손수 차를 운전해 왔다면, Mather Point 구역과 그랜드캐니언 빌리지 지역까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계획을 짜도록 하자. 즉, 투사얀에서든 국립공원 내 숙소든, 적어도 하루를 묵어 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럴 시간조차 할애할 수 없다면 Mather Point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Rim Trail을 따라 약 1km쯤 떨어진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까지라도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란다. 먼 길이 아니니, 절벽을 따라 걷는 아찔함과 곳곳의 뷰 포인트에서 다양한 각도의 환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Mather Point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에 치여 실랑이하는 것보다 이런 여유로운 트레일을 걷는 것이 훨씬 기억에 남을 것이다. 더군다나 야바파이 포인트 옆에 세워진 지질 박물관과 서점(Yavapai Geological Museum & Book Store)까지 방문한다면 매우 훌륭한 하이킹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그랜드캐니언이 형성된 지질학적 배경과 작은 스케일의 미니어쳐처럼 만든 그랜드캐니언의 전반적인 모형 그리고 다양한 사진과 기념품 및 관련 서적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쯤 구입한다면 좋은 기념이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이고 또 당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은 아마 가 봤을 수도 있겠지만, 가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만큼 이 공원에 와 봤다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니 기억할 만한 작은 기념품 하나쯤 들고 집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겠나. 그리고 그 아담한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그랜드캐니언의 모습도 꽤나 낭만적이다. 500km에 이르는 그랜드캐니언에서 단지 1km를 걸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얻는 가치는 1/500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크다.
혹시 1km를 왕복하기 불편하다면 차를 타고 Yavapai Point Parking 구역으로 가면 바로 코앞이니, 그렇게라도 다녀왔으면 한다.
이번 여정에서는 이곳 Mather Point에 들르지 않았다. 대신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로 곧바로 가서 그곳의 역사와 또 다른 풍경을 담고자 한다.
Background of Grand Canyon
여정을 지속하기 전에 그랜드캐니언의 배경에 대해 알아 두면 좋을 듯하다. 그랜드캐니언의 규모만큼이나 그 관련 배경과 지식도 엄청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는 일반 관광객의 마음을 오히려 어지럽게 만든다. 따라서 필요한 내용만 간단히 정리하였으니 대략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랜드캐니언에서의 여행을 좀더 풍요롭게 해 줄수 있을 것이다.
역사
인디언의 선조들이 4,000년 전부터 이 일대에 살았다고 하며, 현재 이 국립공원 주변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그 후손인 하바수파이(Havasupai) 부족과 후알라파이(Hualapai) 부족이 그 역사를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랜드캐니언을 찾은 최초의 이방인은 1540년경 금을 찾으러 온 스페인의 탐험대였지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870년 무렵 군인 출신인 John Wesley Powell의 헌신적인 탐험 덕택이었다. 그는 남북전쟁에 참전해 팔 하나를 잃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랜드캐니언을 세상에 알렸다. 1903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후 감격해 국립공원 지정을 서두르게 되었고, 1908년에 National Monument로 지정된 후 1919년에 드디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마다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 국립공원은 미 서부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리
그랜드캐니언은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고원지대인 거대한 콜로라도 고원(plateau)과 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콜로라도강이 침식되어 형성되었다. 그 길이가 443km에 이르며, 그중 가장 깊은 계곡이 형성된 중심부의 길이는 약 90km에 이른다. 또한 최대 폭이 30km에 달하며, 깊이는 1.6km나 되기 때문에 콜로라도강 밑바닥에서 고원지대인 상부로 올라가면서 다양한 기후와 식생의 변화를 보인다. 콜로라도강 남쪽의 South Rim에 비해 강 북쪽의 North Rim은 해발고도가 400m 정도 높으므로, 겨울철에는 많은 눈이 덮이기 때문에 출입이 제한된다.
지질
그랜드캐니언은 눈에 보이는 풍경만큼이나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가장 맨바닥의 기저층(Vishnu Basement Rock)이 18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으로, 엄청난 침식의 시간 속에 그 얼굴을 드러냈다. 이 기저층 위를 수억 년에 걸쳐 6개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 퇴적암들이 쌓였고, 가장 상부에 형성된 최근의 지층은 2억 7천만 년 전의 Kaibab 지층이다. 이런 엄청난 지질학적 시간 속에 형성된 지층들은 약 7천만 년 전에 일어난 융기에 의해 해안 지대에서 3,000m 가량 높아진 고원지대로 변모하게 되었다. 또 이 곳을 흐르게 된 콜로라도강에 의해 수백만 년 동안 침식을 거듭하며 오늘날의 거대한 협곡을 형성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아직 그 생성 원인과 지질의 역사는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연구자가 이곳의 수수께끼를 푸는 논문을 쓰고 있다.
기후
그랜드캐니언은 그 규모만큼이나 위치에 따른 기후와 기온의 차가 크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고도가 더 높은 North Rim은 South Rim보다 기온이 좀 더 낮지만, 두 지역 모두 전형적인 고원지대의 기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맨바닥의 저지대는 고원의 Rim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사막의 기후를 보여 준다. 만일, 한쪽 Rim에서 시작해 콜로라도강의 바닥까지 내려간 후 반대쪽 Rim으로 하이킹을 한다면 그 엄청난 여정만큼이나 극심한 기후와 기온의 변화도 감내해야 한다.
Climate data for South Rim, Grand Canyon NP, AZ
Month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Nov Dec
Average high (°C) 4.4 7.2 10.6 15.6 21.1 27.2 28.9 27.2 24.4 18.3 11.1 6.1
Average low (°C) -7.8 -6.1 -3.9 0.0 3.9 8.3 12.2 11.7 8.3 2.2 -2.8 -6.7
Average precipitation (mm) 36.8 40.6 31.8 21.8 15.5 10.7 49.5 56.6 39.1 29.2 23.4 39.1
Climate data for North Rim, Grand Canyon NP, AZ
Month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Nov Dec
Average high (°C) 2.8 3.9 6.7 11.7 16.7 16.7 25.0 23.9 20.6 15.0 7.8 4.4
Average low (°C) -8.9 -7.8 -6.1 -1.7 1.1 4.4 7.8 7.2 3.9 -0.6 -4.4 -6.7
Average precipitation (mm) 81.5 83.1 66.8 43.3 31.2 20.6 48.0 71.1 51.1 35.3 38.4 71.9
Climate data for Colorado River, Grand Canyon NP, AZ
Month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Nov Dec
Average high (°C) 13.3 17.2 21.7 28.3 32.8 38.9 41.7 39.4 36.7 30.0 20.0 13.0
Average low (°C) 2.2 4.4 7.8 12.8 16.7 21.7 25.0 23.3 20.0 14.4 7.2 2.2
Average precipitation (mm) 15.5 18.5 20.3 10.9 8.6 8.4 20.3 39.4 21.1 16.5 9.4 17.5
동식물
1.6km에 이르는 고도차는 생태계에도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깊은 협곡은 남쪽과 북쪽 경사면의 일조량에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북쪽을 향하게 되는 South Rim의 경사면은 일조량이 적어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자라는 반면, 남쪽을 향하게 되는 North Rim의 경사면은 사막지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관찰된다.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1,7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그중에는 그랜드캐니언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Tusayan Flameflower, Sentry Milk-vetch 등)도 있다. 그 밖에 350종의 새와 90여 종의 포유류, 57종의 양서류 그리고 콜로라도강에 17종의 어류가 공존하고 있다. 특히 조류 중에는 가장 휘귀한 종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콘도르(California Condor)가 있는데, 이 새의 날개폭은 3m에 이르러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제일 큰 새로 알려져 있다. 이 새는 알을 2년에 하나만 낳고, 암수가 평생을 함께 사는 특징이 있다. 또한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니, 여행 중에 혹시 이 새를 보게 된다면 큰 행운일 것이다.
관광
그랜드캐니언은 크게 South Rim, North Rim, West Rim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중 대부분의 관광객이 거쳐 가는 South Rim이 그랜드캐니언을 대표하고 있는데, 그랜드캐니언 빌리지(Grand Canyon Village)와 방문객 센터를 포함하는 넓은 부지 안에 다양한 시설과 전망대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등 수많은 관광객을 반기고 있다. North Rim이나 West Rim의 경우에는 접근성에 제한이 있는 반면, 이곳 South Rim은 서쪽의 Hermits Rest부터 직선거리로 35km 떨어진 동쪽 끝 Desert View 사이의 대부분 Rim에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또 곳곳에 많은 전망대와 트레일이 마련되어 있어 하이킹을 원하는 여행객에게도 많은 루트를 제공하고 있다.
South Rim을 구경하기 위해 그랜드캐니언 빌리지 내의 El Tovar 같은 유서 깊은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투사얀의 다양한 호텔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무방하다. 비록 많은 관광객이 Mather Point를 옆에 끼고 있는 그랜드캐니언 방문객 센터 쪽으로 모여들지만,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도 그 명성과 면적에 대응할 만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따라서 다채로운 여행을 위해서는 이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를 방문할 것을 추천하다. Rim을 따라 다양한 뷰 포인트와 갤러리, 역사적인 건물, 작지만 과거의 흔적들로 가득한 Verkamp’s Visitor Center, 빌리지의 세월을 간직한 호텔과 랏지(Lodge), 기차역과 철도, 유명한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Bright Angel Trail) 등 그랜드캐니언이라는 국립공원을 일궈 온 모든 역사와 흔적이 이곳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그리고 Hermits Rest로 가는 셔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South Rim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이 셔틀버스 시스템을 잘 활용해야 한다. 빌리지 일대는 일반 차량들도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지만,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에서 Hermits Rest까지의 구간과 64번 도로에서 Yaki Point로 가는 구간은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한다. 따라서 이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만 한다.
셔틀버스 노선은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의 4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투사얀에서 그랜드캐니언 방문객 센터까지 운행하는 보라색 노선을 활용하면, 투사얀에서 묵는 여행객들은 굳이 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이 셔틀을 이용해 국립공원 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후 이 방문객 센터 정류장에서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로 운행하는 파란색 노선과 Yavapai Point부터 Yaki Point 사이를 운행하는 노란색 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그리고 Hermits Rest 쪽으로 가고 싶다면 파란색 노선을 타고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의 서쪽 끝 정류장인 Hermits Rest Route Transfer에서 내려 빨간색 노선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이런 무료 셔틀 버스를 이용해 South Rim 전 구역을 자유롭고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충분히 머물러야겠다는 각오와 의지 그리고 시간뿐이다.
동쪽 끝의 Desert View로 가는 64번 도로 역시 Kaibab 국유림을 관통하는 만큼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다. 더군다나 주요 전망대로 연결되는 만큼 페이지(page)시로 가는 일정이 없더라도 시간을 내어 꼭 즐겨 보도록 하자. Grandview Point도 유명하지만, 역시 거대한 협곡의 시작을 바라볼 수 있는 Desert View는 이 도로에 올라섰다면 반드시 가 봐야 할 사이트다.
North Rim은 1년 내내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South Rim과는 달리, 매년 10월 15일부터 5월 14일까지 문을 닫기 때문에 1년에 5개월 정도만 방문할 수 있다. 비록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시기를 피해야만 비로소 그 북쪽에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South Rim에 비해 방문객이 적고 또 서비스 부지도 작지만, 좀 더 조용하고 차별화된 여행이 될 뿐만 아니라 North Rim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South Rim 쪽 도로보다 월등히 훌륭한 경치를 자랑하므로 매우 매력적인 방문지가 될 것이다.
West Rim은 인디언 보호구역을 포함해 엄청나게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만, Skywalk나 하바수 폭포로 가는 포장도로 등을 제외하면 접근이 힘든 오프로드가 대부분이라 일반 여행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역이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좀 더 와일드한 그랜드캐니언을 구경하고 싶다면 이 서쪽의 그랜드캐니언을 꿈꾸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든든한 4륜 구동의 SUV를 몰고 하바수 폭포와 토로윕(Toroweap)에 가 보는 것을 미 서부 여행의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목표가 있고 희망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절반은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반은 삶이 해결해 줘야 할 몫이다.
참고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하는 헬기 투어가 거쳐가는 곳이 West Rim 구역 중에서도 거의 끄트머리다. 진정한 그랜드캐니언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Grand Canyon Village
그랜드캐니언 방문객 센터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 그랜드캐니언 빌리지로 들어선다. 이 마을은 그랜드캐니언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을 방문하려는 여행객들을 위해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성된 곳이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발달하기 전, 기차로 여행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만든 철도와 역사 그리고 Rim을 따라 여러 호텔과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아래쪽에는 국립공원 및 부속 시설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의 주택을 조성했다.
우선, Verkamp’s Visitor Center를 향해 차를 움직인다. 여기부터 서쪽으로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헤드(Bright Angel Trail Head) 사이는 호텔들과 상점 그리고 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중심 지역이다. 하지만 호텔 투숙객이 아닌 일반 관광 차량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주차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복잡한 빌리지 안에 주차할 곳이 없어 걱정하는 것보다 Mather Point 쪽에 주차를 한 후 셔틀을 타고 들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신히 빈 곳을 하나 찾았지만 뭔가 애매하다. 주차할 공간은 나오지만, 주차선의 배치를 살펴보니 공식적인 주차 공간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다른 몇몇 차들도 이곳의 주차난을 돌파하고자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차를 이곳저곳에 구겨 넣은 상태다.
주차장에서 몇 걸음 벗어나자 곧바로 그랜드캐니언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은 언제 봐도 숨막히게 좋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장관과 감동을 글로 표현할 재능이 없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로 끄적어 봐야 신통치 않다.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 이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간직하면 그만인 곳이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사진으로라도 몇장 남겨서 두고두고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면 충분하다.
Mather Point와 객관적으로 비교할 때 이곳의 전경은 분명 무언가 살짝 부족하다. Mather Point가 유명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적나라한 협곡의 모양새와 그 규모를 확연히 드러내는 스케일적 측면에 있어 Mather Point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그런 면에서 이 빌리지 앞의 전경은 분명 그 정도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가늠조차 할 수 없는 Mather Point에 비하면, 이곳은 저 아래로 이어진 트레일과 중심부로 이어지는 계곡의 침식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Rim을 따라 트레일을 걸으며 시선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협곡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전망의 요소가 되고 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이 절벽을 따라 걷거나 사진을 찍으며 이 풍경을 즐기고 있지만 크게 부산스럽지는 않다. 저쪽 Mather Point보다는 확실히 여유로운 공간이다.
주차장부터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헤드까지는 대략 800m 떨어져 있다. 가볍게 걸으며 협곡을 관찰하고 또 곳곳의 건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905년에 지은 역사적 랜드마크인 El Tovar 호텔이 트레일과 맞닿아 있다. 대충 봐도 오래된 듯한 저 목조 호텔에서 그랜드캐니언을 하룻밤 껴안고 잔다는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듯하다. 그리고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신다면, 그랜드캐니언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아침이 될 것이다.
Lookout Studio
그렇게 호텔을 지나쳐 트레일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자 저 앞에 Lookout Studio가 보인다. 절벽 끝에 돌로 지은 1914년도의 멋스러운 건물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이곳의 과거를 보여 주는 한 판의 누런 사진을 본 후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크지는 않지만 돌로 세운 벽과 여러 기념품이 조화를 이룬 이 가게의 멋스러움은 꽤나 만족할 만하다. 원래 이웃한 Kolb Studio처럼 사진 촬영 및 전시를 위한 공간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이렇게 기념품 숍으로 운영되고 있다. 돌로 지은 이곳과 나무로 지은 Kolb Studio가 묘하게 대비되는 곳이다.
이곳을 나가면 절벽 끝에서 그랜드캐니언을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El Tovar가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려 사진을 담아 본다. 분위기도, 위치도···. 이곳은 여러 모로 좋은 사진을 담을 만한 포인트로 추천할 만하다.
Kolb Studio
Lookout Studio를 나와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는 Kolb Studio로 발걸음을 옮긴다. 1층에서는 서적을 판매하고 있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그랜드캐니언을 담은 많은 그림과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그랜드캐니언 곳곳의 풍경과 역사를 한 점, 한 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 점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격이 상당하다. 이렇게 눈으로만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사진보다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은 분명 원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을 텐데, 물감으로 색칠한 투박한 그림들이 사진보다 더 인상적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화가의 감성과 인상이 녹아 있기 때문일까.
Bright Angel Trail Head
얼마나 오래전의 물건인지, 투박한 철덩어리로 만든 촬영기를 구경하고 나서 밖으로 나온다. 이제 빌리지의 서쪽 끝에 거의 다 왔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헤드(Bright Angel Trail Head)로 가 본다.
역시 유명한 포인트인 만큼 그랜드캐니언과 그 협곡으로 다가서는 아득한 이 트레일을 구경하고자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절벽에 걸터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사람, 트레일을 따라 갈 수 있을 만큼 걸어갔다 오는 사람, 그럴 용기까지는 없지만 마냥 설레는 듯 그 길을 동경하고 있는 사람, 가족이나 친구들과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 이 와중에 길가에 앉아 담배를 피는 젊은 유럽 친구 등 나이도 성별도 그리고 인종도 국가도 다양하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모든 이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자연을 앞에 두고 불편한 걱정을 되새기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나 걱정 한두 가지쯤은 달고 살지만, 이 위대한 자연으로 그런 삶을 잠시 덮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이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의 시작 부근에 자리를 잡고 길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이동해 본다. 구비구비 스위치백처럼 내려가며 터널을 지나고 또 절벽을 따라 한참을 내려간다. 그리고 저편 협곡으로 이어지면서 시야에서 벗어난다.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 협곡의 바닥인 콜로라도강까지 이어질 터이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Yaki Point 아래 부근에서 시작하는 South Kaibab Trail과 함께 그랜드캐니언의 Rim과 바닥의 콜로라도강을 연결하는 유명한 하이킹 코스이자, South Rim을 대표하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트레일의 시작점은 해발고도 2,100m이며, 그 끝은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해발고도 760m 지점이다. 표고차는 1,340m, 길이는 13km에 이른다. 그리고 트레일의 끝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North Kaibab Trail을 만나게 되고, 이를 따라 반대편의 North Rim으로 올라갈 수 있다.
남쪽의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시작점에서 북쪽의 North Kaibab Trailhead를 연결하는 이 위대한 하이킹의 길이는 총 36km로, 마라톤 코스와 비슷하다. 일반적인 등산이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반해 그랜드캐니언의 이 트레일은 반대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이 색다르다. 아무튼 그 엄청난 길이와 고도차에서 볼 수 있듯이 여느 여행객이 도전할 수 있는 코스는 아니지만, 하이킹을 좋아하는 많은 도전자가 오늘도 이 트레일을 따라 원시의 그랜드캐니언을 즐기며 걷고 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하이킹을 계획하고 시도할 수 있는 자라면 여행자 중에서는 “갑”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산을 날아다니던 20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별 대수롭지 않은 코스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주어져도 갈지 말지를 고민할 듯하다. 마음은 분명 열망하겠지만, 부실해진 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이 트레일에 대한 상세한 코스를 첨부한다. 지도는 있으니, 언제가 실행할 날이 오면 도움이 될 것이다.
Return
브라이트 엔젤을 끝으로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Verkamp’s 방문객 센터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도로 쪽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Hermits Rest로 가는 셔틀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하루 묵었더라면 나도 저 셔틀을 타고 서쪽 끝으로 가 봤으리라. 그러나 니는 오늘 South Rim에 머물지 않는다. 원래는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묵을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다. 빌리지의 호텔은 고사하고 투사얀의 호텔들도 빈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익숙한 South Rim이었기에 큰 미련 없이 바로 페이지로 가기로 결정한 후, 이참에 North Rim에 다녀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미련이 남는다. 숙소를 좀 더 알아보고 하루만이라도 머물렀어야 했는데, 이렇게 금방 떠나려니 메인 요리는 먹지도 못하고 에피타이저만 할짝거리다 떠나는 느낌이 든다.
길가에 브라이트 엔젤 랏지(Bright Angel Lodge)가 독특한 모양새로 세워져 있다. 인디언의 향수가 느껴지는 건물의 양식과 색깔이 제법 개성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Rim Trail을 따라 협곡을 바라보는 것도 주된 즐거움이지만, 이렇게 안쪽의 도로를 따라 오래전에 지은 빌리지의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다.
좀 더 걸어가자, 커다란 기차가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처럼 연기를 뿜으며 철로에서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실어나르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역사(station)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이 기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해 빌리지의 어느 호텔에 묵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실컷 즐기고 돌아갈 것이다. 그 또한 매우 낭만적이지 않은가.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지만, 기차 여행은 분명 나름대로 정체성이 뚜렷한 여행 방법인 듯하다. 겨울에 저 기차를 타고 눈 쌓인 그랜드캐니언에 방문한다면 무척이나 색다른 경험이 될지도 모르겠다.
도쿄에서 신간센을 타고 설국으로 가던 때가 생각난다. 산맥을 넘기 위해 길고 긴 터널을 한참 달려 빠져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하얀 눈의 나라를 보고 설레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저 기차와 겨울을 생각하자, 온 세상이 눈에 파묻혀 도로도 집도 구분할 수 없던 설국에서의 뜨거운 온천이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주차장에 거의 다다르자, 인디언의 유적에서 봤던 집터처럼 생긴 커다란 벽돌식 건물인 Hopi House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1905년에 문을 연 이 붉은 랜드마크는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의 역사를 함께 시작한 건물들 중 하나로, 지금은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 독특한 모양새를 바라보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아침부터 세도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터라 여기서는 그다지 여유가 없었지만, 볼 건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Verkamp’s Visitor Center로 들어선다. 작은 규모지만, 그랜드캐니언의 개발을 함께했던 역사적인 소품들로 가득하다. 그랜드캐니언, 특히 이곳 빌리지 지역은 대부분의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역사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위대한 자연과 함께 국립공원의 오랜 역사를 보여 주는 이런 요소들은 방문객들을 더욱 즐겁고 또 특별하게 대해 준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19. 미국 숙박 시설의 종류 (0) | 2019.08.06 |
---|---|
18. 그랜드 캐년에서 페이지(Page)로 가는 길 (0) | 2019.08.06 |
16. 미서부 세도나(Sedona)의 일몰 그리고 영적 에너지 (0) | 2019.08.05 |
15. 미서부 루트 66(Route 66)을 달려 세도나로 가는 길 (0) | 2019.08.05 |
14. 미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여행 루트 2 (0) | 2019.08.0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