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자레인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아무래도 미국의 숙박 시설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남겨야 도리일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여관이나 여인숙 간판을 내걸은 숙박 시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영세한 이런 업체들은 대부분 사라졌거나, 모텔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의 숙박 시설은 주로 개인이 운영하는 펜션이나 게스트 하우스 등을 제외한다면 크게 호텔(Hotel)과 모텔(Motel)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내와 시외를 가리지 않고 전국을 점령한 모텔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모텔을 여관이나 여인숙보다 좀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설을 갖춘 현대식 숙박 시설로 생각한다. 그리고 호텔은 더 비싼 숙박 시설이고, 모텔은 그보다 떨어지는 수준의 숙박 시설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 이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호텔과 모텔을 구분하는 기준은 가격인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건축법상 모텔이라는 명칭은 없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음식점을 포함한 일정 수준의 시설과 객실을 갖춘 업소에 대해 “일반 호텔” 등록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규정도 사라져 여인숙이든, 여관이든, 모텔이든, 모두 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보건복지부의 공중위생관리법을 적용받는 이런 “일반 호텔”과는 달리 신라호텔, 롯데호텔, 하얏트호텔 등과 같은 유명한 대형 호텔은 일반 호텔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법을 적용받는 “관광호텔”이다. 따라서 객실 수, 부대시설, 규모, 외국인 응대 서비스 등 일반 호텔과는 달리 훨씬 구체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호텔이라는 간판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모텔이라는 간판을 내걸은 숙박 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아무튼 이 모텔이라는 명칭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나라는 미국이었다.
알다시피 미국은 넓은 국토를 연결하는 도로 및 자동차 문화가 일찍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자동차 여행객들도 더불어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 업체가 도로 주변이나 도시 외곽 지역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기존 호텔의 구조와는 달리 곧바로 방 앞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한 후 입실할 수 있는 간편한 숙박 업체들이 생겨났다. 이런 구조를 띤 숙박 업체는 1915년경부터 나타났으며, 10년 후에는 수천 개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1925년 12월 12일, 캘리포니아의 샌 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에 호텔을 개업한 아서 하이네만(Arthur S. Heineman)이라는 사람이 “motor hotel” 또는 “motorists hotel”이라는 뜻으로 Milestone Mo-Tel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처음에 그는 Milestone Motor Hotel이라고 쓰려 했으나, 이름이 너무 길어서 Mo-Tel이라는 줄임말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지금도 샌 루이스 오비스포에 이 건물이 남아 있으며, “세계 최초의 모텔”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 및 도로의 발달과 더불어 생겨난 모텔은 자동차 여행을 하는 사람이든, 잠시 쉬었다 가려는 사람이든 상당히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싼 가격만큼 시설과 서비스는 열악했다. 그러던 중 성공한 건축업자인 케먼스 윌슨(Kemmons Wilson, 1913~2003)이 가족 여행을 하며 모텔에 들렀는데, 모텔의 수준이 너무 형편없다는 데에 분개해 마침내 모텔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 1952년, 마침내 120개의 방을 갖춘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이라는 모텔을 개장했다. 식당, 수영장, 에어컨을 구비한 이 모텔은 미국의 고속도로망이 확충되면서 더욱 성장했으며, 이로써 많은 후발 주자들을 이끌게 되었다.
모텔의 기능적 측면을 보면, 우리나라의 모텔도 미국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의 모양이야 좀 다르지만, 어쨌든 지하나 지상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간단한 체크인 과정을 거쳐 룸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모텔은 도심 지역에 더욱 밀집해 있다는 것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좁은 국토의 어디에서든 모텔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미국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한편, 부분적으로 안 좋은 색채를 띠고 있기는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모텔이라는 간판을 애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모텔 초기에 형성된 열악한 환경, 불륜, 범죄 등의 나쁜 이미지로 인해 요즘은 그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inn, lodge, court, cabin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0년에 미국 호텔·모텔협회(American Hotel-Motel Association)가 그 이름을 호텔·숙박협회(American Hotel and Lodging Association)로 바꾼 것도 그런 변화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물론 한적한 도로변이나 시골 지역에서 모텔 간판을 내걸은 숙박 업체가 여전히 영업을 하고 또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워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모텔 체인 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대체로 시설이 좋지 않다. 미국의 국립공원 주변이나 나름 말끔한 시설을 갖춘 대부분의 대형 숙박 업체들은 모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inn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 업체들도 inn이나 lodge 등의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를 가지고 숙박 시설의 차이점을 구별하기도 어렵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inn은 우리나라 말로 치면 주막, 여관 정도에 해당되는 보통명사로, 도심지의 호텔과 달리 시골에 위치한 소박한 숙박 시설을 의미한다. 호텔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싫고 또 주로 외곽 지역의 도로변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기에 차라리 평범한 inn을 쓰는 것이 오히려 여행객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Holiday Inn, Best Western Inn, Hampton Inn 등과 같은 대형 체인점은 대부분 inn을 사용한다.
하지만 자연에 둘러싸인 시골 지역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숙박 시설이나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오래된 호텔들은 lodge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산속의 산장 같은 이미지를 풍기기에 우리나라의 펜션 느낌이 나는 숙박 업체도 있지만, 대체로 inn과 딱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구조와 시설을 갖췄지만 inn을 사용하든, lodge를 사용하든 그것은 주인장 마음이다. 그리고 단독의 오두막 시설을 갖춘 곳은 cabin이라는 명칭을 자주 애용한다. 이 역시 오두막 현관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근본적으로 모텔과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좀 더 private하고 또 주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며,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등 아늑한 느낌을 준다는 장점이 있기에 미 서부로 여행을 한다면 이 cabin 스타일의 숙소에서 머물러 볼 것을 추천한다. 대형 숙박 업체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이 오두막집에서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 서부를 여행하는 동안 대부분 모텔 스타일(명칭이 inn이든 lodge이든 motel이든)의 숙박 시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호텔은 큰 도시에나 있지 작은 도시나 국립공원 주변에는 거의 대부분이 모텔이다. 사실, 호텔은 자동차 여행객에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가격이 비싸다는 문제점은 둘째로 치더라고 주차비가 무료인 모텔에 비해 꽤나 비싼 주차비를 별도로 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발레파킹이 필수이므로, 드나들기도 불편한 데다가 팁도 줘야 한다. 더군다나 취사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라 이래저래 효용성이 낮다. 미국은 어디를 가든 모텔이 발달해 있고, 유명한 체인 브랜드만 선택해도 크게 실망할 위험성은 낮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기 싫다면 Holiday Inn, Best Western Inn, Hampton Inn 같은 대형 브랜드를 비교해 적당한 것으로 고르면 된다. 또한 소규모라도 이들 브랜드보다 더 멋진 숙박 업체들도 많으니, 그 지역에서 평점이 높고 유명한 업체를 예약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아무튼 이것만은 명심하자. 전자레인지는 필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모텔들은 전자레인지를 구비하고 있지만, 종종 없는 경우도 있으니 잘 확인하기를 바란다. 여행이 길다면 비싼 저녁을 매번 사 먹기보다는 모텔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숙소에서 저녁을 차려 먹는 것이 비용적 측면이나 만족도에서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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