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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미서부 페이지(Page)와 글렌 캐년 그리고 호스슈밴드(Horseshoe Bend)

미서부/미서부 16,000km의 여행기록

by 라임스톤 2019. 8. 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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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오전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맑은 날씨가 아침을 연다. 오늘은 어제처럼 딱히 가야 할 곳을 정해 놓지도 않았다. 느긋하게 오전을 맞이하고 브런치를 먹는다. 이제 슬슬 움직여 페이지 인근을 돌아볼 생각이다. 긴 여정의 중간중간에 이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멀리 나가지 않아도 페이지 인근에는 가 볼 곳이 많다. 글렌캐니언댐(Glen Canyon Dam)과 파월 호수(Lake Powell), 말발굽 모양으로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호스슈 밴드(Horseshoe Bend), 나바호족의 자산인 엔텔롭 캐니언(Antelope Canyon) 등이 페이지와 매우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브런치를 먹고 나서야 오늘의 주된 계획을 확정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일정에 대해 몇 가지 고민만 했을 뿐 결정하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해야 할 듯하다. 

 


보트를 타러 가야겠다. 저 넓은 글렌 캐니언 국립휴양지구(Glen Canyon National Recreation Area)의 중심이 되는 거대한 파월호(Lake Powell)에서 보트를 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페이지에서는 Wahweap Marina 구역과 Antelope Point Marina 구역이 있다. 이곳에서 보트를 빌려 하늘만큼 파란 파월 호수를 마음껏 내달려 보는 경험을 오늘에서야 꼭 이루고 말겠다. 도로를 달리는 여행이지만 호수를 따라 달려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Wahweap Marina
페이지에서 89번 도로를 타고 글렌캐니언댐을 건넌 후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Wahweap Marina 지구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Lake Shore Drive)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숙박 시설인 Lake Powell Resort와 Marina 관련 시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드넓은 주차장이 조성된 지역이 나온다. 중간에 파월 호수를 전망할 수 있는 Overlook Point도 길가에 마련되어 있으니, 잠시 차를 세우고 이 호수를 담아 가는 것도 좋다.


그리고 페이지에 묵는 것도 좋지만, 파월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Lake Powell Resort에 머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호수와 그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보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롭게 힐링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리조트가 있는 구역에는 보트를 빌릴 수 있는 렌탈숍이 없다. 이쪽은 개인이 소유한 보트가 정박하거나 운반해 온 보트를 런칭시킬 수 있는 Private Marina이기 때문이다. 보트를 빌려 주는 숍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도로에 Boat Rental이라고 써 놓은 표지판이 있으니, 이를 잘 살피면서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도로 끝까지 이동하도록 한다.

Wahweap Boat Rental
도로 끝에 거의 다다르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비포장도로가 나오며, 그 도로를 따라 호수 쪽으로 내려가면 맨땅의 주차장이 넓게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차를 대고 호숫가에 세워져 있는 렌탈 숍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 제법 큰 건물의 외벽에 Boat Rentals라고 씌어 있으니 금방 눈에 띌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다리를 건너 그 건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기념품 가게가, 왼쪽에는 렌탈숍이 위치하고 있다. 모터보트를 몰아 본 경험이 없더라도, 떨지 말고 침착하게 안으로 들어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도록 하자. 날짜를 미리 지정해 온라인(http://www.lakepowell.com/things-to-do/powerboat-watercraft-rentals/)에서 예약을 해도 되지만, 일정이 확실치 않다면 현장에서 직접 빌릴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여름의 성수기에는 당일 렌트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잘 판단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예약을 할 때 Houseboat(숙박이 가능한 큰 보트)와 헷갈리면 안 된다. 이 보트는 파월 호수를 떠다니며 배 안에서 숙박과 취사가 가능하도록 만든 큰 보트다. 따라서 일반 파워보트(Powerboat)를 선택해 예약하도록 한다. 물론 하우스보트(Houseboat)가 상당히 비싸지만, 파월 호수 위에서 며칠 보낼 계획이라면 그리 해도 좋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경험이 없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거나 망설일 필요는 없다. 반드시 보트를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면, 과감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지금 당신은 성인이고, 운전면허증(국제운전면허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이들은 자동차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당신의 보트 경험이 있든 없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뜻 빌려준다. 물론 모든 리스크(Risk)는 본인이 짊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이런 방식이 맘에 든다. 기준을 마련하고 또 그것을 충족시킨다면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다. 대신 뒤따르는 책임은 모두 내가 감당하면 된다. 운전할 자격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의무를 갖고 타면 된다.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나면 온당히 본인의 책임이다. 혹시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면서까지 보트 렌탈 서비스를 폐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트 운전이 비행기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자동차 운전보다 쉽기 때문에 보트 운전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미리 갖추고 조심히 운전한다면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은 도로 위보다 낮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고가의 보트를 쉽게 빌려주는 것이다. 
파워 보트를 운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신호와 표지판 등 도로 주행과 관련된 규칙을 알아야 하듯, 이 역시 기본적인 룰(rules)은 숙지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웹 사이트에 들어가면 powerboat safety에 대한 비디오가 있으니, 반드시 시청한 후 기본 규칙들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는 자동차의 주행과 유사하다.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듯, 보트도 기본적으로 우측통행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배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 여러 규칙이 있으나, 크게 5가지만 기억하도록 한다.
첫째, 넓은 호수 위에서는 우측통행의 기준이 애매하지만, 비교적 좁은 수로를 지난다면 우측으로 항행한다. 둘째, 내 항로 선상으로 마주오는 보트가 있는 경우, 자신의 보트가 상대방의 좌현(port, left)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우현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간을 확보한다. 셋째, 서로 횡단(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두 보트가 수렴하는 방향)하는 두 보트의 경우에는 충돌의 위험이 있으니, 상대방의 보트가 우현(starboard, right) 쪽에서 보이는 보트(삼각형의 좌변쪽 항로에 있는 보트)가 진로를 변경해 피한다. 넷째, 추월하는 경우, 느린 보트는 우현(오른쪽) 쪽을 내주고 또 앞지르는 보트는 상대방 보트의 우현 쪽으로 추월한다. 다섯째, 잘 모르겠다면 속도를 줄이거나 아예 멈추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면 상대방 보트가 알아서 처신할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선이다. 배가 많거나 상황 파악이 안 된다면 속도를 줄이는 것이 초보자의 상책이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내용만 숙지해도 다른 보트와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 넓은 호수에 두 보트가 가까이 접근할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게 되니 걱정 말고 넓은 곳에서는 마음껏 달리면 된다. 그러나 호수가 좁아지는 구역이나 다른 배가 좀 가까이 다가온다면 속도를 줄여 상대방이 알아서 안전하게 대응하도록 양보하자. 그러다 보면 boating에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Lake Powell
보트 대여료는 역시 만만치 않다. 두세 시간을 빌리나 하루를 빌리나, 비용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다른 곳에 갈 계획이 없다면 하루 종일 빌려 더 먼 곳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다.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마치고 계약을 완료한다. 자동차 대여와 마찬가지로, 보트도 보험을 들 수가 있으니 잘 판단하도록 한다. 대여 과정과 반납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건네받은 서류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인스트럭터(instructor)에게 가면, 보트 작동법에 대해 빠르게 설명해 준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면서도 그 여자는 외워 놓은 글을 읽듯 진도를 빠르게 나간다.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감잡고 중요한 몇 가지만 숙지하고 나서 배에 오른다. 음악을 틀지 못한다고 또 공조 장치를 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차를 운전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잖는가. 그렇게 할 일을 마친 인스트럭터는 아무 걱정없이 떠나 버린다. 나 혼자만 긴장하며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줄을 풀고 천천히 후진한 후 다시 레버를 밀어 보트를 전진시킨다. 정박지를 둘러싼 경계 부표 라인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엔진을 “wake up”하지 않고 매우 천천히 배를 몰아 빠져나가야 한다. 마치 자동차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액셀을 밟지 않아도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 정박지 입구를 빠져나가면 그때부터 레버를 앞으로 서서히 밀어 엔진을 wake up 한다. 그러면 그제야 프로펠러가 큰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기 시작한다. 
정박 지역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속도를 높여 본다. 레버를 조금만 밀었을 뿐인데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보트가 앞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다. 레버를 조금씩 더 밀어 본다. 더욱 커진 엔진 소리와 함께 보트의 뱃머리가 들리며 가속한다. 보트 뒤로 하얀 물보라가 일어나며 정박지가 멀어져 간다. 점차 속도에 익숙해지자 레버를 끝까지 밀어 본다. 더욱 사나운 엔진 소리와 맞바람이 보트의 체감 속도를 배가시킨다.
이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다. 수면 위를 달리는 보트에서 바라다보는 색은 단지 두 가지뿐인 듯하다. 파란색과 누런색···. 호수와 하늘의 색깔은 똑같다. 짙은 푸른색으로 물든 하늘과 호수는 그들을 분리하는 누런 대지에 의해 구별될 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물론 약간 과장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외부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느낌과 호수 위를 달리는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넓은 호수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자유롭고 신나는 경험이었다니···. 마치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차를 몰아 길도 없는 거친 평원을 가로지르는 그때의 기분과 유사했다. 먼지 대신 물보라를 일으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광활한 공간에서 속도감을 만끽하며 글렌캐니언댐으로 향한다. 그리고 바로 앞에 멈춰서 댐을 올려다본다. 일반적으로 댐은 그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호수 한가운데서 댐을 마주하고 올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한쪽에서는 몇몇 노인들이 호숫가에 보트를 멈추고 한가로이 낚시를 하며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보트를 돌려 나온다. 
그런 후 파월호를 속속들이 살펴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달린다. 파도가 다소 높은 좁은 협곡을 지날 때는 배가 심하게 요동치지만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지나가는 다른 보트와 손인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한다. 그러다 어느 경치 좋은 호숫가에 배를 멈추고 천천히 주변을 감상한다. 차로는 접근하기 힘든 곳을, 이렇게 배를 이용하면 어느 곳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진다.


출렁이는 보트 위에서 간단히 마련해 온 점심을 먹으며 이 순간을 애써 잡아 본다. 이번에는 오래 탈 계획이 없었지만, 다음 기회가 온다면 파월호를 거슬러 올라가 글렌 캐니언 국립휴양지구의 끝까지 가 보고 싶다. 내일의 종착지인 Bullfrog까지 이 호수를 따라가면 얼마나 걸릴까.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배를 몰아 페이지로 돌아오는 꿈 같은 일정을 상상해 본다. 
아쉽지만, 다시 배를 돌려 정박지로 돌아간다. 보트가 다가오자, 청둥오리처럼 생긴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괜시리 미안해진다. 호숫가에 홀로 정박해 있는 커다란 Houseboat가 드문드문 보이는데,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2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하루 종일 빌렸을 것을···.. 비용 차이도 별로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다음을 위한 자극제가 되니 크게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누리면 그 다음은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이루어 나가는 것도 삶의 원동력이다.
정박지로 돌아가 주요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운다. 렌터카와 마찬가지로, 보트를 빌릴 때는 기름이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보트를 타고 난 후에는 쓴 만큼 기름을 다시 채우고, 기름값을 지불한 후 그 영수증을 들고 보트 대여점으로 가야 한다. 물 위에서 주유라니···. 색다른 경험이다. 그러나 배를 대기가 쉽지만은 않다. 자동차와는 달리 보트는 물이라는 유체 위에 떠 있기 때문에 관성 작용을 컨트롤하기가 초보자로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 인스트럭터에게 보고하면 보트의 이상 여부를 살펴본다. 특히 프로펠러를 유심히 살펴본다. 호수의 가장자리와 같이 수심이 낮은 곳을 잘못 달리게 되면 프로펠러가 돌에 부딪혀 파손되는 일이 생기고는 하는데, 이것이 가장 흔한 사고 중에 하나다. 따라서 호숫가에 보트를 댈 때는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보트에 이상이 없다면, 인스트럭터는 서류에 사인을 해 준다. 그 서류를 들고 보트를 대여했던 숍으로 돌아가 주유 영수증과 함께 제출하면 반납이 완료된다. 
보트를 즐긴 오늘의 결정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차를 타고 다시 되돌아 나오는 순간에도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페이지로 향한다.



Glen Canyon Dam
가는 길에 글렌캐니언댐 방문객 센터에 들러 댐 사이트를 잠시 둘러본다. 상당히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거쳐 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댐과 계곡을 내려다봤지만, 그물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 시야가 좋지 않다. 북적거리는 관광객 틈에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이곳을 제대로 전망할 수 있는 한적한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래서 다시 차를 몰아 댐 남쪽에 있는 Glen Canyon Dam Overlook 사이트로 이동한다. 이쪽은 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객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한가롭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방문객 센터가 있는 다리 쪽보다 훨씬 훌륭하다.
비록 넓지는 않지만, 적당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또 그 아래로 짧은 트레일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멋진 전망대가 나온다. 주변을 둘러싼 갈색 사암(sandstone)의 퇴적 무늬가 만드는 웨이브(wave)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댐 하부의 깊은 계곡과 그 바닥을 흐르는 콜로라도강이 한 폭의 그림으로 웅장하게 다가온다. 



1956년에 공사를 시작해 1966년에 문을 연 글렌캐니언댐은 하류의 후버댐과 함께 콜로라도강을 막아선 거대한 두 개의 댐 중 하나다. 이렇게 형성된 파월호(Lake Powell)는 미드호(Lake Mead) 못지않은 엄청난 면적과 담수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댐의 높이는 약 220m, 길이는 480m에 이른다. 
미 서부에는 유명한 국립공원과 사이트가 많지만, 콜로라도강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족보 없는 역사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그랜드 서클을 완성한 수많은 공원의 모습은 직간접적으로 콜로라도강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지와 강물의 조합은 그토록 상상하기 힘든 자연의 걸작들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콜로라도강이 있다. 미 서부를 여행하면서 여러 곳에서 콜로라도강을 만날 테지만, 그때마다 저 멀리 록키산에서 발원한 이 거대한 강줄기의 힘을 매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서부의 자연과 역사는 이 콜로라도강의 역사와 함께한다.



Horseshoe Bend
페이지 남쪽에 위치한 호스슈 벤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 터라 오늘은 이곳을 지나쳐야만 했으나 처음 갔을 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여기가 콜로라도강과 그것이 만든 좁은 협곡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 중에 하나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곳의 유명세도 점차 높아져 요즘은 페이지를 거쳐 가는 많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고 하니, 절대 놓지지 말기를 바란다.
89번 도로와 인접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래가 가득한 트레일을 따라 약 1km 정도 언덕을 넘어 걷는다. 그러다 보면 바위 지대가 나오고, 곧 직벽의 낭떠러지와 그 아래 굽이쳐 흐르는 말발굽 모양의 콜로라도강이 내려다보인다. 절벽의 높이도 대단하지만, U자 형으로 침식된 협곡의 모양이 비현실적인 풍경 사진을 담기에 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 서부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거위 목같이 구불거리는 협곡과 강줄기를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지만, 이곳은 그중에서 가장 미려한 풍경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과 함께 호스슈 벤드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강 바닥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는 깊이를 드라마틱하게 담아낼 수 있는 절벽의 뾰족한 바위 끝 지점은 관광객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으로 자리 잡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튼 급박하게 사진을 찍고 돌아서기보다는 절벽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좋은 사진 포인트도 찾고 또 어느 바위에 걸터앉아 그 경치를 하염없이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 사실, 너무 거대한 자연의 풍경보다는 이 정도 규모의 풍경이 좋은 사진을 남기기에 더 적합하다. 



Page에서의 마지막 밤
다소 일찍 들어온 숙소···. 오늘은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며 다음 여정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저들처럼 우리도 수영장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저녁을 먹는다.
이런 곳에서 어둠이 찾아들면 특별히 할 일은 없다. 각자 소소한 일을 하며 하루의 피곤을 풀고 또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일 뿐이다. 긴 여정을 지속하려면, 오늘 밤은 내일을 위해 몸을 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시간이 여유롭다. 그래서 로비에 있는 그 식당의 한편에 마련된 바에 가서 자리를 잡고 간단히 칵테일을 주문한다. 마가리타 한 잔 그리고 마티니 한 잔···.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았기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나초를 주문한다. 그런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양도 엄청났고 맛도 기대 이상이다. 층층이 쌓인 색색의 나초 사이로 소고기와 치즈가 잔뜩 섞여 있었고, 바삭한 식감과 함께 진한 치즈의 풍미가 잘 어우러져 계속 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 술을 마시기 위해 나초를 먹는 게 아니라 나초를 먹기 위해 술로 목을 축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저녁 식사보다 이 녀석의 칼로리가 3배는 높아 보인다. 좀 전에 먹은 저녁은 결국 에피타이저에 불과한 식사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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